[인터넷]여자는 다소곳하라? "닷컴에선 안통해요"

  • 입력 2001년 2월 11일 18시 27분


한 인터넷 경매업체의 K팀장은 점심을 먹고 들어오다 여직원 10여명이 컴퓨터 앞에 모여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궁금해 화면을 들여다보니 B양의 포르노 동영상. K팀장이 뒤에 서 있었지만 이들은 아무 거리낌없이 계속 동영상을 보며 말을 하고 있었다. 얼굴이 화끈거린 K팀장. 결국 자리를 슬그머니 피한 것은 남성인 K팀장이었다.

닷컴기업 내 여성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남성 중심이던 기업문화가 바뀌고 있다. 여성은 다소곳하고 섬세해야 하며 남성은 희생적이고 박력 있어야 한다는 전통적 개념이 무너지거나 바뀌고 있는 것.

인터넷서비스업체인 프리챌에서는 사장이 회의에 참석한 여직원에게 담배를 건네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진다.

금융사이트 운영회사인 노튼힐의 L씨(24·여)는 “여자다운 옷을 입지 않아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면서 “남녀를 불문하고 바지에 티셔츠를 즐겨입기 때문에 옷만 봐서는 남녀를 구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여성이라면 엄두를 내기 어려운 일이다. 업무에서도 여성들은 차별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 모든 면에서 남녀는 동등한 대접을 받는다. 심지어 여성들이 힘겹게 짐을 나르는 것을 보고도 팔짱을 끼고 있는 남성들을 닷컴기업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남자들이 기사도가 없다”는 식의 불평을 하는 여성은 없다.

남성들이 여성을 닮는 현상도 있다. 김종훈씨(31)는 라이코스코리아에 입사한 뒤 친구들로부터 “말투가 변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남자들끼리는 가벼운 욕도 적당히 섞어가면서 대화를 나누게 마련입니다. 그럴수록 오히려 친근하게 느끼기도 하죠. 하지만 많은 여사원들과 함께 일하다 보니 단어선택을 조심하게 되고 말투도 훨씬 부드러워졌습니다.”

벤처기업 홍보대행업체 링크인터내셔널의 이재철씨(32)는 “여성 최고경영자(CEO) 밑에서 일을 하다보니 업무처리를 꼼꼼하고 섬세하게 해야 할 때가 많다”며 “무조건 밀어붙이는 식의 업무스타일로는 실력을 인정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임방희이사(33·여)는 “팀장이나 임원은 남녀를 떠나 조금 더 중요한 일을 하는 동료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임이사는 “벤처기업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대기업과의 문화적 차이가 더욱 심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천광암기자>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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