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진우]3金 청산인가 3金 아류인가

  • 입력 2001년 2월 5일 18시 35분


진퇴양난(進退兩難) 진퇴유곡(進退維谷)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나아갈 길도 물러설 길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일진대 어쩌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요즘 심사가 그러할 듯도 싶다. 법조계 후배인 김중권(金重權)씨가 대표가 된 민주당은 연일 ‘강한 여당’을 외치며 공세를 펼치는데 그 속셈이야 뻔히 보이지만 딱 부러지게 이거다 하고 내놓을 대응책이 마땅찮다. 자민련을 국회 교섭단체로 인정해 주고 ‘민생 국회’를 선언했지만 그 정도로 풀릴 문제가 아니다.

이총재로서는 기막힐 노릇이다. 지난 대선에서 패배하고 다시 야당총재가 된지 2년여만에 ‘무조건 국회 등원’을 선언하는 등 모처럼 ‘국민을 상대로 하는 큰 정치, 통 큰 스타일의 정치’로 차기 지도자의 면모를 보이려 했는데 일이 또 이렇게 꼬일 수 있나 싶을 것이다. 더구나 ‘의원 꿔주기’란 얼토당토아니한 짓을 한 여권이 ‘안기부 돈 사건’을 빌미로 오히려 칼자루를 쥔 형국이니 말이다.

▼'과거의 집' 털고 당당하게▼

‘안기부 돈 사건’에서는 ‘의원 꿔주기’를 덮고 야당을 옥죄기 위한 ‘여권 카드’라는 냄새가 풀풀 나지만, 그 성격이야 어떻든 1000억원이 넘는 엄청난 돈이 과거 여당 총선 자금으로 들고 난 것이 드러난 이상 ‘냄새’를 물고늘어지기는 어렵다. ‘당신들은 얼마나 깨끗하냐, DJ비자금도 함께 까자’고 해봐도 여론의 반응이 영 신통치 않다. 국가 예산이든 뭐든 일단 그것부터 먼저 밝히고 상대 것도 밝히라고 하는 것이 떳떳하지 않느냐는데는 어떤 항변이나 변명도 군색할 수밖에 없다.

돈을 받았다는 강삼재(姜三載)의원이 제 발로 검찰에 나가 부담을 덜어 주면 좋으련만 본인이 막무가내로 못 나가겠다는데야 등을 떠밀 수도 없다. 그러잖아도 YS가 걸핏하면 ‘의리’를 들먹이는 판에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영남 민심이 하루아침에 돌아설지도 모를 일이다. “YS 집권시 정치자금일 가능성이 크다”는 김영일(金榮馹)의원의 말처럼 ‘몸통’에 대한 심증은 가지만 이 또한 운조차 떼기 힘들다. 도리어 발끈한 YS에게 “가르침을 받을 자세에 변화가 없다”고 엎드려야 할 지경이다.

이 정권과 이총재 간에는 기본적으로 ‘상생(相生)’이 자리잡기 어려웠다. 여권은 이총재와 한나라당이 ‘발목잡기’로 일관해 왔다고 비난하고, 한나라당측은 이총재가 상생정치를 하자고 하면 여권이 예외없이 ‘뒤통수를 쳐’ 정쟁(政爭)으로 몰아왔다고 주장한다. ‘세풍’ ‘총풍’에 이어 지금의 ‘안기부 돈 사건’ 역시 ‘이회창죽이기’ 시리즈라는 것이니 피차간에 지독한 불신이다.

문제는 이런 악재들을 이총재가 몰랐다하더라도 그것들이 구여권의 잘못된 관행이요, 비리의 소지가 크다는 점에서 이총재가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총재는 이제 과거의 짐을 털어내야 한다. 과거의 짐을 털어내는 일은 이총재가 애초 선명하게 내걸었던 ‘3김정치 청산’과 어긋나는 게 아니다. 털 것은 털고 DJ든 YS든 당당하게 맞설 때만이 3김 정치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젊은 의원 목소리에 답해야▼

‘정치인 이회창’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바로 그런 것이었다. 상대적으로 깨끗한 인물을 통해 술수나 꼼수보다는 원칙을, 인치보다는 법치로 이른바 ‘3김식 정치’의 낡은 틀을 바꿔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이총재가 보여온 모습은 비록 ‘여권의 작용에 대한 반작용’이었다고 해도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게 사실이다. 특히 모든 기준을 오직 2년 후 대권을 잡는데 유리하냐, 불리하냐에 맞추느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처럼 비쳐서는 안된다. 그보다는 ‘이회창식 곧은 정치’로 국민에 새로운 희망을 안겨 줘야 한다.

어차피 여권은 앞으로 정권 재창출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정권을 호락호락하게 내줄 집권 세력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고 보면 이총재의 ‘시련’은 미래진행형이다. 그것을 이겨내느냐의 여부는 결국 이총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총재는 이제 3김 청산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3김의 아류가 되어 권력을 탐하는 정객에 머물 것인가. 그것을 결정해야 한다.”

이총재는 한나라당 한 젊은 의원의 목소리에 답해야 한다.

전진우<논설위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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