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죽음의 고속도로' 법정에 선다

  • 입력 2001년 1월 26일 18시 35분


‘죽음의 고속도로.’ 서울이나 원주 등지에서 대관령을 넘어 강릉 쪽으로 꼬불꼬불한 길을 다 내려가면 넓고 곧은 길이 나온다. 강원 강릉시 성산면 주민들은 마을 앞을 지나는 영동고속도로의 이 지점을 이렇게 부른다.

75년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된 후 지난 26년 동안 주민 43명이 이 길을 건너다 목숨을 잃었다. 주민들은 그동안 수없이 안전대책을 건의해 왔으나 한국도로공사측은 ‘귀머거리’나 다름없었다.

▼26년간 43명 횡단중 숨져▼

주민들이 마침내 집단행동에 나서자 도로공사측은 지난해말 도로 밑을 지나는 지하터널을 뚫어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주민들이 그동안 겪었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은 기가 막힌다. 유가족 38명은 27일 도로공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낸다.

특히 주민들은 도로봉쇄 등 극단적인 집단행동에 나서야 부랴부랴 대책을 마련하는 행태에 더욱 분개하고 있다.

▽‘죽음의 고속도로’ 실태〓강릉의 관문인 성산면 주민들의 비극은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된 직후 도로를 건너던 주민 2명이 숨지면서 시작됐다.

안모씨(성산면 구산리)는 87년과 94년 남동생 2명을 교통사고로 잃은 데 이어 자신도 지난해 1월17일 비슷한 장소에서 길을 건너다 비명에 갔다. 금산리에 사는 최모씨는 부부가 차례로 이 도로에서 횡사했다.

이곳에서 유난히 사고가 많은 것은 꼬불꼬불 내려오던 도로가 갑자기 넓고 곧아지면서 운전자들이 과속하는 경우가 많고 시작되는 곳이 급커브 지점이어서 운전시야를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

반면 안전시설이라고 내세울만한 것이 없다. 마을 인근에 소형 지하통로가 만들어져 있으나 가로 세로 각 2m에 불과해 트랙터 등이 통행할 수 없다. 게다가 비가 올 때는 물이 차오르고 경사가 심해 고속도로를 횡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하통로 설치요구 외면▼

▽주민투쟁〓성산면 구산리, 금산리 등 7개리 마을 주민 52명은 92년 도로공사와 건설부에 지하통로설치 등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냈다. 그러나 “설치 타당성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그후 지난해까지 또 다시 18명의 주민이 죽어갔다. 주민들은 성산면개발자문위원회와 성산지역발전모임을 중심으로 10여차례 청와대와 건교부 도로공사 등에 거듭 호소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지난해 3월 주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고속도로에 2시간동안 경운기 등을 세워놓고 점거농성을 벌였다. 지난해 11월초에는 “주민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 결사적인 점거농성을 계속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도로공사에 보냈다.

도로공사는 관계자를 급파, 비로소 협상에 나섰으며 한달여만에 지하통로설치 등 사고방지대책 10개항에 합의했다.

▼"도로공사 귀머거리 행정 분통"▼

▽소송제기와 문제점〓유가족 38명이 서울지법에 낼 손해배상청구소송은 시민단체인 ‘도시연대’ 소속 오재창변호사 등2명의 변호사가 무료변론을 맡았다.

유가족과 변호인들은 “도로가 처음부터 구조적인 문제점을 갖고 있었으나 도로공사가 예산부족을 이유로 방치해왔다”고 주장했다.

또 주민들은 극단적인 행동을 동원해야 비로소 문제가 해결되는데 대해 불만을 터뜨렸다.

기세남(奇世南·50·성산지역발전모임 회장)씨는 “집단시위를 해야만 민원을 해결해주는 것이 당국의 올바른 자세냐”고 꼬집고 “99년 한해동안에만 주민들에게 16억280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한 손해보험협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도로공사와 싸웠더라도 더욱 쉽게 풀렸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도로공사측은 “주민들의 최초 요구사항을 모두 들어주기에는 예산이 너무 많이 들어 합의점을 찾기 어려웠으나 최종적으로 서로 한발씩 양보해 타협점을 찾게 됐다”고 밝혔다.

<강릉〓경인수기자>sunghy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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