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alley리포트]'다인종 열린공간'의 무한한 잠재력

  • 입력 2001년 1월 14일 18시 48분


실리콘밸리에서 순수한 백인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학교캠퍼스는 물론 코스트코, 월마트 등 쇼핑몰에 가보면 세계인을 모아놓은 인종전시장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중북부 미국과 너무 대조적이다. 문득 내가 와 있는 곳이 어딘가 의아해 하기도 한다.

실리콘밸리에는 백인 49%, 히스패닉 24%, 아시아계 23%, 그리고 흑인 4%가 살고 있다. 미국내에서 백인의 비율이 50%에도 못미치는 예외적인 지역이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다양성과 통일성이 공존하는 곳. 분명 코스모폴리탄의 모습이다.

돌이켜 보면 50,60년대의 실리콘밸리 개척자들은 ‘Go West’를 외치며 달려온 미국 동부와 중부의 백인들이었다. 그런데 실리콘밸리가 급성장한 70년대와 80년대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개척자들이 일군 밭에 많은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필요해지면서 그 자리를 아시아계가 채워 나갔다. 아시아인의 ‘Go East’ 맞바람이 분 것이다.

조사자료에 의하면, 90년대 후반 이곳 하이테크 벤처기업중 아시아계가 운영하는 기업의 비율은 3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년간 아시아계가 급성장한 결과이다.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과 인도의 비율은 각각 20%와 9%에 달한다. 사실 많은 아시아계 엔지니어가 80년대 이후 벤처창업자로 변신한 데에는 높은 언어장벽과 문화적 격차가 한 몫을 하였다. 보수가 높은 관리직으로의 승진이 봉쇄된 상태에서 차라리 창업으로 돌파구를 마련했던 것이다.

오늘날의 실리콘밸리에는 고대 그리스시대에 코스모폴리타니즘을 불러 온 그리스인과 바바리안의 차별같은 것은 없다. 있다면 좋은 기후와 잘 갖추어진 생활여건, 엄격한 법제도 기반과 공정한 상거래 관행, 그리고 좋은 머리와 능력을 우대하는 가치규범이 있을 뿐이다. 아시아계의 좋은 두뇌와 연구개발력이 개척정신으로 무장된 미국인의 사업능력과 결합하여 마음껏 나래를 펼치는 곳. 이곳에서는 우리가 한때 부르짖던 ‘세계화’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실리콘밸리는 아직 열려 있다. 그 위에 펼쳐진 e―밸리는 더욱 광활한 미개척지로 남아 있다. “가자, 동쪽으로! 올바른 세계화를 향해서”

changsg@stanford.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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