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돌아본 PC 10년史-10년전엔 286도 "꿈의 컴퓨터"

입력 2001-01-07 18:33수정 2009-09-21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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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다렸던 꿈의 컴퓨터 286AT. 1MB의 충분한 메모리용량과 무려 40MB의 하드디스크….’

12㎒ 80286 CPU를 갖춘 ‘최신’ 컴퓨터 광고를 본다면 호랑이가 담배를 찾아 물려고 할 것이다. 128MB 메모리에 40GB의 하드, 866㎒ 펜티엄Ⅲ CPU를 사용하는 우리에게 286 PC광고는 ‘선조들은 정교한 돌도끼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역사책 구절로 느껴진다. 불과 10년전의 일인데도 말이다.

삼보컴퓨터의 SE8001 등 국내에 개인용컴퓨터(PC)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82년경이지만 보편화된 것은 90년부터다. 당시 주종은 5.25인치 플로피드라이브(지금은 사라져버린)가 두 개 달린 XT컴퓨터. 부팅 디스켓을 넣어야만 작동됐다.

하드디스크가 달린 ‘경이로운’ 286AT는 91년 인기를 끌었다. 이때부터 용산에서 컴퓨터를 판매해온 전자랜드 컴퓨터협의회 김용진회장은 ‘LG마이티 삼보80286 삼성알라딘 현대솔로몬’ 등 이름도 아련한 제품들을 언급했다. 이 당시 모뎀의 주류는 1200bps 또는 2400bps였다. 5만6000bps도 답답해 초고속전용망을 쓰는 우리에게 1200모뎀으로 통신을 한다는 것은 벽보고 도(道) 닦는 수준.

하지만 시솝 다운로드 채팅 전자우편 등 통신용어는 대부분 이 때 생겨났다. 사용자들은 88년 시작된 케텔을 비롯,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 등에 가입해 밤새워 통신을 했다.

92, 93년경의 PC주종은 386DX. 52MB의 하드가 주로 장착됐다. 용산 나진상가 상우회의 이근식회장은 “40만원이 넘던 120MB의 ‘고용량’ 하드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전자상가를 찾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싱가포르산 사운드블래스터와 국산 옥소리 등 사운드카드와 TV카드를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

94, 95년은 486PC의 시대. 사운드카드의 성능이 좋아지고 영상카드를 장착해 문서뿐만 아니라 화면을 편집할 수 있었다. ‘멀티미디어’라는 용어가 유행했다. ‘찌리릭찌리릭’ 시끄럽게 소리가 나던 도트 프린터는 이때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조용한’ 컬러 잉크젯이 많이 팔렸고 96, 97년경 잉크젯은 레이저프린터에 자리를 넘겨줬다.

펜티엄586이 일반화된 96년은 PC의 분수령이었다. 운영체제가 도스에서 윈도로 바뀌었기 때문. 복잡한 명령어를 달달 외우지 않아도 쉽게 컴퓨터를 다룰 수 있고 여러개의 창을 동시에 띄워놓고 작업할 수도 있게 됐다.

PC의 성능은 계속 좋아졌지만 많이 팔리는 PC는 항상 250만원 내외의 가격을 유지했다. 10년전 25㎒속도의 386SX나 현재 1㎓의 CPU를 가진 PC나 가격이 비슷하다.

인터넷은 90년경 연구소 등을 중심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지만 98년경에야 폭발적으로 보급됐다. 동네마다 생겨난 PC방과 99년 초고속통신망의 구축이 한몫했다.

노트북이 국내에 소개된 것은 90년. 뉴텍코리아가 286노트북을 선보였고 삼성 효성 등도 386노트북 개발에 뛰어들었다. 당시 노트북은 일반인이 쓰기에는 초고가. 일반화되기 시작한 것은 97년 이후였다. 현재는 15인치 모니터에 데스크탑과 다름없는 성능을 가진 노트북이 나오고 있다.

2001년의 PC는 고화질의 차세대디스플레이, 40∼80GB급 하드, 800㎒∼1㎓급 CPU, 128MB 메모리가 주종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또 데스크톱과 랩톱 이외에 PDA의 기능이 점차 강화되고 휴대전화도 컴퓨터의 역할을 하게 돼 ‘두고 다니는’ 컴퓨터에서 ‘들고 다니는’ 컴퓨터로, 또 ‘입고 다니는’ 컴퓨터로 발전하고 있다.

<김승진기자>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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