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경영 버전2001]닛산 자동차, 공포의 '기업재생 청부업자'

입력 2001-01-07 17:52수정 2009-09-2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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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지기 위해서는 대담해야 한다.”

170㎝가 안 되는 작은 키에 짙은 눈썹, 부리부리한 눈매의 카를로스 곤 사장(47). 언제나 ‘기업재생 청부업자’라는 표현이 따라다니는 그가 자주 쓰는 말이다.

닛산에 오기 전에 이미 미슐랭 르노 등 세계의 부실기업을 재생시켜 명성을 인정받은 그는 ‘코스트 커터(비용삭감자)’ ‘헤드 커터(인력삭감자)’ 등의 무시무시한 별명으로도 불린다.

1954년 브라질에서 레바논계 부친과 프랑스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난 곤사장은 16세때 혼자 프랑스로 건너가 프랑스 최고의 이공계 특수학교인 에콜 드 폴리테크니크(국립 이공대학)와 에콜 드 민 드 파리(국립파리고등광업학교)를 마쳤다.

78년 졸업과 함께 취직한 첫 직장은 프랑스의 타이어업체인 미슐랭. 처음부터 능력을 인정받고 파격적인 승진을 거듭해 31세때인 85년 미슐랭 브라질지사장에 취임했다. 연간 1000%의 초인플레 상황에서 4년 만에 회사재건에 성공했다. 35세 때 미슐랭 북미지사장에 취임해서는 2위 타이어업체인 유니로열 굿리치를 인수하고 기업통합에 성공해 주목을 받았다.

이때 르노자동차의 루이 슈바이처 회장이 그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르노는 심각한 경영난 끝에 국영기업에서 민영화됐지만 50억프랑(약 1조원)의 연결적자를 나타내는 등 만성적자에 허덕이고 있었다.

96년 르노 수석부사장으로 영입된 곤은 대담한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채산이 맞지 않는 포르투갈 공장과 벨기에 공장을 폐쇄했다. 벨기에 공장에서 3000명이 해고되자 노조가 강력반발하고 프랑스제품 불매운동으로까지 확산됐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부품업체들도 비용과 품질을 기준으로 철저하게 선별한 뒤 한 회사에 대량발주했다. 구매가격을 낮추는 것은 물론이다. 이 방식으로 200억프랑(약 4조원) 이상의 비용을 절감해 2년 만에 회사를 흑자로 전환시켰다. 곤사장에 대한 슈바이처 회장의 신임은 대단하다. 슈바이처 회장은 “닛산에 있는 공을 4년후쯤 불러들여 르노의 COO로 앉힌 뒤 언젠가는 후계자로 삼을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곤사장은 평일에는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일하면서 ‘세븐일레븐’이라는 별명까지 붙었지만 나머지 시간은 철저히 가족(부인, 자녀 4명)과 함께 보내고 있다.

<도쿄〓이영이특파원>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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