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인터뷰]TTL 소녀 임은경을 만나다

  • 입력 2001년 1월 4일 18시 30분


신비로운 소녀를 만났다. 대중 문화의 팝 아이콘으로 신성시됐지만 그만큼 박제된 이미지 안에 갇혀 있던 소녀 임은경. CF계를 주름잡았던 이 조그마한 소녀는 얇은 막을 젖히고 드디어 영화에 접속했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 이후 줄곧 '소녀 사냥꾼'이라 불릴 만큼 영화 속에 자주 소녀를 등장시켰던 장선우 감독의 신작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그녀는 이 영화에서 게임방 카운터를 지키는 돈 바꿔주는 소녀 '희미'와 게임 속 주인공 '성냥팔이 소녀' 두가지 역할을 모두 연기한다.

자신에게 지워진 신비로운 분위기를 벗겨내는 일이 쉽진 않았겠다 싶었는데 그녀는 의외로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런 건 하나도 두렵지 않아요. 영화에 대한 두려움은 좀 있죠. 연기는 처음 하는 거니까. 15초 짜리 CF 연기를 하는 것과 영화 연기는 많이 다르잖아요. 더 많은 표정연기가 필요할 것 같아요."

아직 남 앞에 서는 게 서툴고 인터뷰 자리도 어색한 소녀는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도 아닌데 몸이 뻣뻣이 굳어 있었다. "힘 풀어요. 저 카메라 없어요"라고 말하자 그제서야 그녀는 물기를 삼킨 스폰지처럼 몸을 늘어뜨렸다.

사실 임은경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싶은 건 너무 많기도 했고 아주 없기도 했다. 스타에겐 알아서 좋을 게 없는 일들이 간혹 있는 법이다. 신비로운 분위기, 그 자체에 매료되어 있는 사람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그녀는 분명 신비롭기만 한 10대는 아니었다.

그녀는 남들처럼 전화기 붙들고 몇 시간씩 친구와 속닥거리고 만화책 보며 까르르 웃는 평범한 자신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동경 바빌론> <짱> 같은 만화 좋아하고요, 친구들과 노래방 가서 트로트 많이 불러요."

'어라, 신세대의 팝아이콘 같은 임은경이 트로트를?' 하고 생각하고 있을 즈음 그녀는 난데없이 "'남행열차'나 '아파트' 같은 노래를 잘 부른다"고 대뜸 대답했다. 게다가 "게임은 거의 해본 적이 없다"는 생소한 발언까지. 어째 신세대답지 않은 대답이다.

CF에서 누군가의 질문을 받고 대답했던 것들... "남자친구는 있는지" "성적은 어떤지", 그런 질문에는 애매 모호한 대답으로 일관했다.

"공부는 썩 잘하지 못해요. 그냥 열심히 해야죠. 이제 고3인데."

말끝을 흐리는 그녀는 아무래도 수능시험에 대한 부담감이 많은 듯했다. 하지만 지금 발등에 떨어진 불은 <성냘팔이 소녀의 재림>임이 분명하다. 그녀는 장선우 감독의 이름 석 자도 들어본 적없던 생 초보 연기자이니 만큼 촬영 전 배워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고 했다.

"장선우 감독님 영화는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가 많아서 비디오로 볼 수 있는 건 <꽃잎> 밖에 없었어요. 영화를 보긴 봤는데 너무 놀랐어요. 그런 장면(야한 장면)이 너무 많잖아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 워낙 만화적 상상력으로 중무장된 영화라 요즘 그녀는 만화책도 열심히 보고 영화도 많이 챙겨본다. <성냘팔이 소녀의 재림> 연기를 위해 일부러 챙겨본 영화는 <중경삼림> <와호장룡> <니키타> <레옹> 등. 그밖에도 액션 연기를 위해 두세 달 전부터 발 차기, 몸 스트레칭 등 무술연습을 시작했다.

"시나리오가 너무 어려워 한줄한줄 꼼꼼히 읽어나가며 무언가를 적기도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며 씽긋 웃는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선택한 이유는 "가슴속에 한 남자를 사랑했던 기억, 아픔을 간직한 소녀의 이미지가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라고.

부산 올 로케로 촬영되는 이 영화를 위해 곧 부산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될 그녀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딛는 게 마냥 얼떨떨한 평범한 소녀 이상은 아니었다. "대학에서 일어 일문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말하는 평범한 고3 수험생.

요즘 그녀는 공부하랴, 연기 연습하랴, 친구들과 수다떠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황희연 <동아닷컴 기자>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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