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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2월 25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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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밀레니엄의 첫해를 보내는 길목에서, 21세기의 첫해를 목전에 둔 시점에서 중국의 고사성어(古事成語)라니. 한 해의 스포츠에 대한 소회가 없을 수 없을 터인데 굳이 ‘맹자(孟子)’와 ‘열자(列子)’에 나오는 얘기를 꺼내고 싶은 것은 왜일까.
늦은 밤까지 텔레비전의 ‘포크송 빅 4’의 공연 방송을 편안하게 본 세대라서 일까. 눈 내린 날이면 넉가래질로 아침이 바쁘기만 하지만 ‘경치 참 좋네. 냇물도 넉넉해진데다 더 맑아졌고’라며 허리를 펴는 시골생활 탓일까. 이도 저도 이유가 될 터이지만 실은 보기 민망한 프로야구판 때문이다.
구단 측이나 선수협의회 측의 논리나 견해차 및 사태추이야 이미 세상에 알려진 일이니 세세히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구단들이 선수협의회 제2기 모임을 주도한 팀별 간판급 선수들을 자유계약선수로 방출한 보복성 행위가 마땅한 일인가. 선수들은 왜 구단과의 문제 해결에 외부지원을 기대하는가. 프로야구팬, 시민단체, 정치인, 학계, 정부의 개입이 있게 되면 서로 한발 물러서야 하는 게 옳다는 생각이다. ‘왜 그리 급한가.’
얼마 전 네티즌은 7초 이상 못 참는다는 기사를 보았다. 키워드 검색업체가 조사한 결과 네티즌이 홈페이지에 들어가 7초 안에 원하는 정보나 서비스를 얻지 못하면 다른 곳으로 떠난다는 내용이었는데 ‘과연 그렇겠다’라고 무릎을 쳤다. 스피드를 즐기고, PC방을 제집 드나들듯 하는 아이들을 보아 온 탓이 아니라 나 자신도 답답해 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도 ‘빨리 빨리’가 인터넷 시대에는 미덕이라는 말에 동의하는 셈이다.
7초밖에 참지 못하는 네티즌을 인정하면서 프로야구판의 조급성을 못마땅해 하는 게 모순일까.
그렇다고 보지는 않는다. 정보를 얻기 위한 네티즌의 클릭은 수많은 상대를 갖고 있다. 한 쪽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다른 상대를 고를 수 있다. 네티즌은 거래 대상을 바꿀 수 있어 협상에 크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프로야구판은 구단 측과 선수 측의 협상이고 비즈니스이다. 한쪽이 한번에 다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제 갈 길을 간다면 결국 판을 깨는 수밖에 도리가 없는….
한두 해 한 것도, 한두 해 할 것도 아닌 프로야구이다. 뿌리가 들려 키가 커진 모종은 결국 어떻게 되고 마는가. 아들 손자 대대손손이 돌을 들어 나르면 산을 옮길 수 있다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연초에도 그랬듯이 프로야구판이 또 한번 중국사람들의 ‘만만디(慢慢的)’를 곱씹게 한다.
<논설위원·체육학박사>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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