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적총재 밀어낸 '대북 저자세'

  • 입력 2000년 12월 24일 18시 42분


대한적십자사(韓赤) 장충식(張忠植)총재가 5개월만에 중도하차하는 것을 보는 우리의 마음은 씁쓸하다. 장총재의 퇴진은 그동안 우리 정부의 줏대없는 대북자세가 초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장총재의 사퇴 뉴스를 들은 국민 사이에서는 한적총재의 인사권을 북측이 쥐고 있는 것 아니냐는 냉소도 나오는 실정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한 데 대해 대북정책을 주도해온 정부관계자, 구체적으로 국가정보원 당국자는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장총재의 한 월간지 인터뷰기사를 문제삼은 북측의 시비에 대해 우리측이 처음부터 단호하고 당당하게 대응했다면 사태가 이렇게 꼬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본란이 이미 여러 차례 지적한 바와 같이 장총재의 인터뷰 기사 내용은 지엽적으로는 부적절한 표현이 일부 있었다지만 전체적으로는 북한을 이해하고 따뜻하게 대하자는 것이 주내용이었다.

그런데도 북측이 대남방송을 통해 대대적인 비난공세를 펴자 정부는 무슨 큰 죄라도 저지른 것처럼 장총재의 이름으로 비밀리에 대북 유감서한을 보내게 했다. 이때 정부가 쉬쉬하면서 사건을 덮으려고만 하지말고 북측에 당당하게 공개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렸어야 옳았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더욱이 제2차 남북이산가족 상봉때 이 사업의 주관책임자인 장총재가 도망가듯 일본으로 피신한 희한한 사태에서 정부의 ‘대북 저자세’가 다시 한번 확인됐다. 장총재는 당시 일본에서의 일정도 잡혀있지 않은 채 서둘러 출국하여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됐다. 장총재가 일본에 가 있는 동안에도 서울에 온 북측 대표는 공개적으로 비난을 계속했다. 이에 대해 우리측은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했다.

장총재는 선출될 때부터 말이 많았다. 전임 정원식(鄭元植)총재를 밀어내고 장총재를 앉히려는 정부의 처사에 대해 한적 중앙위원회에서는 ‘낙하산 인사’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한적은 28일 새 총재를 뽑을 예정이지만 이번에도 정부측이 추천하는 인사를 전원합의 방식으로 선출하고 명예총재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인준을 받는다.

한적은 앞으로 북측을 상대로 인도적 기본사업 외에 이산가족의 면회소 설치, 생사 및 주소확인, 서신교환, 3차 상봉 사업 등을 주관해야 한다. 이런 중요한 사업에 조금이라도 차질이 없도록 적임자를 총재로 선출해 흐트러진 조직을 재정비해야 할 것이다. 특히 정부는 이번 장총재사건을 교훈삼아 대북정책 추진 자세를 재점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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