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해외논단]윌리엄 사파이어/美흑인―공화당 ‘균열’치료할 때다

  • 입력 2000년 12월 19일 18시 38분


이번 미국 대선에서 가장 큰 도박을 한 사람은 미국의 흑인 지도자들이었다. 전국유색인종지위협회(NAACP)는 린든 존슨 시대 이후 가장 극단적으로 공화당을 공격하는 광고를 후원했다. 또 제시 잭슨 목사는 공화당을 반동의 온상으로, 공화당의 기수들을 미국 흑인의 희망과 일자리를 위협하는 존재로 묘사했다.

대부분의 민주당원들이 앨 고어의 뒤를 따라 선거결과를 받아들이고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지금도 잭슨 목사는 비공식적인 재검표를 요구하며 계속해서 흑인들의 분노를 부추기고 있다.

왜 선거의 승리자를 승리를 훔쳐간 도둑으로 비난하는 것일까. 이는 흑인 지도자들의 도박이 정치적 실수였음을 인정하는 것보다는 선거결과를 도둑 맞았다는 환상을 만들어내는 편이 더 쉽기 때문이다. 또 흑인들을 하나의 정당에만 투표하는 단일화된 블록으로 묶어주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

기표 잘못 때문에 무효처리가 된 표 중에서 흑인 유권자들의 표가 더 많다는 주장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흑인 중에 처음으로 투표를 하는 사람의 비율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처음 투표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은 흑인 지도자들의 전면적인 캠페인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흑인 유권자들을 투표소로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흑인 지도자들은 도박의 위험을 막아줄 방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흑인 지도자들은 흑인 유권자들에게 모두 똑같은 정당의 똑같은 후보에게 투표할 것을 요구했다. 그 결과 부시는 흑인 유권자의 표를 8%도 얻지 못했다.

후버연구소의 셸비 스틸 연구원은 이러한 정치적 분열의 간격을 좁히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질문의 형태로 제시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묻는다. “흑인 지도자들이 지금 새로운 대통령이 된 부시와 한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선거기간 중에 부시와 흥정을 해야 했던 것이 아닐까?”

물론 부시는 자신에게 표를 던지지 않은 유권자들의 의견도 당연히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또한 그가 어중간하게나마 자신과 만날 의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수용하기 위해 자신의 견해 중 일부를 수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흑인 유권자들로부터 더 많은 지지를 받았더라면 흑인들의 견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더 높아졌을 것이라는 가정이 훨씬 현실적이다.

유대인들도 흑인들처럼 한결같이 민주당을 열성적으로 지지해왔다. 그러나 유대인들 가운데 적어도 5분의 1 정도는 공화당에 둥지를 틀고 있다. 이렇게 표를 나눔으로써 유대인들은 일부나마 정치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는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 출신의 미국인들, 그리고 노동조합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흑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획일적인 투표성향을 보여주었다. 공화당은 이 문제에 거의 손을 대지 못하고 있고, 민주당은 그런 흑인들의 표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균열을 좁히기 위해서는 양편의 힘이 모두 필요하다. 이제는 흑인들이 공화당에 파고들어가 안에서부터 길을 만들어 나와야 한다.

(http://www.nytimes.com/2000/12/18/opinion/18SAFI.html)

윌리엄 사파이어(NYT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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