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수형/끊어야할 ‘편중인사’고리

  • 입력 2000년 12월 19일 18시 36분


컴퓨터로 데이터베이스를 직접 구축해 ‘정권에 따라 검찰요직 인사가 춤춘다’는 내용을 집중 보도한 뒤 한 독자가 휴대전화로 따졌다.

“이기자는 출신지역이 어디요.”

“대한민국인데요.”

“그런 기사를 보도하는 저의가 뭐요. 정권이 바뀐 지 겨우 3년입니다. 수십년 동안 편중인사로 불이익을 받다가 겨우 3년이 지났는데 이렇게 샅샅이 발가벗겨 비판해도 되는 거요.”

“….”

할말이 많았지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한두 마디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본보 법조취재팀은 이번 기획기사를 준비하면서 고민이 많았다. 98년 2월 정권교체가 이뤄진 직후 했던 작은 ‘결의’ 때문이었다. 당시 우리는 “인사 해설기사를 쓰면서 TK PK나 MK 따위의 용어를 쓰지 말자”고 다짐했다. 지역편중 인사를 해서도 안되지만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보도를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결심은 시간이 지나면서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지역편중인사와 그로 인한 지역감정 악화가 엄연히 ‘사실’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 나라의 발전을 그르치는 큰 요인의 하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문제를 드러내 해결을 모색하는 것이 정도(正道)가 아닐까.

“수십년 동안 당하다가 이제 겨우 3년이 지났는데…”라고 호소하는 심정도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수긍하기는 어렵다.

군대시절 신병 때 고참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해서 자신이 고참이 된 뒤에 신병에게 부당한 대우를 한다면 악순환만 되풀이될 뿐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는 “자신이 비판한 일을 스스로 하지 않아야 올바로 사는 것”이라고 했다.

이번 보도에 서운함을 느끼는 독자분들에게는 앞으로 어떤 정권이, 어떤 인사를 해도 이번처럼 과학적이고 철저한 분석으로 엄정하게 비판하고 견제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

이수형<사회부>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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