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홍/상과 벌

  • 입력 2000년 12월 8일 18시 31분


현재 세계적으로 시행되는 상 중 최고로 영예로운 것이 노벨상이다. 그리고 인간에게 최악의 형벌은 말할 것도 없이 사형이다. 10일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김대중(金大中·DJ) 대통령은 ‘사형선고’까지 받은 적이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가운데 종신형이나 가택연금을 당한 경우는 더러 있었지만 극형이 확정됐던 인사는 없었다. 최악의 형벌을 경험했다가 최고의 상을 받게 된 DJ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이 새삼 우리의 정치사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올해 노벨상 시상을 앞두고 법무부는 DJ의 수감생활 자료들을 그 가족에게 넘겨주었다. 죄수복을 입고 머리가 빡빡 깎인 채 독서하는 모습과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가족과 면회하는 광경 등이 사진으로 공개됐다. 교도소측은 안기부의 요구에 따라 이 사진들을 촬영했다고 한다. 당시 안기부는 DJ를 비밀리에 어떻게 하지나 않았느냐는 국내외의 루머 해소용으로 그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를 만들었을 수 있다. 그리고 ‘벌받는 DJ’의 모습을 공개함으로써 그에 대한 대중적 실망감을 공작하려 했을 가능성도 있다.

▷죄수복의 DJ 사진은 야당지도자로서의 권위를 손상시킬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 정치탄압의 상징물로 작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 안기부가 이 사진들을 공개하지 않았던 것은 그런 정치적 득실 계산을 정확히 할 수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지금 대통령이 된 그가 과거 그런 고난의 길을 걸었다는 증거를 공개하는 것은 그에 대한 정치적 반대자들의 비판과 민심을 순화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있다.

▷DJ의 옥중 서신과 죄수복 등이 ‘노벨상 제정 100주년 기념전시회’에 4년간 상설 전시될 예정이라고 한다. 노벨재단은 역대 수상자 700여명 가운데 30여명을 골라 그들의 족적을 나타내는 물건들을 전시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칭송과는 대조적으로 국내 일각에서는 그가 수상식에 참석하지 말아야 한다는 여론까지 일었다. 김대통령은 왜 이런 여론이 일었는지 잘 알 것이다. 여하튼 이번 수상은 DJ 개인뿐만 아니라 민족으로서도 영광이다. 큰 박수를 보낸다.

<김재홍논설위원>nieman9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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