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한국엔 왜 '그린스펀' 없나…정책 일관성 상실

  • 입력 2000년 12월 6일 18시 30분


98년 9월, 미국에는 ‘그린스펀 마술(Greenspan Magic)’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폭락위기에 몰렸던 미국 증시가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3차례에 걸친 전격적인 금리인하로 되살아났기 때문이었다.

6일, 뉴욕증시는 또한번 그린스펀 마술로 폭등했다. “미국경제가 완전히 진정됐다(moderated appreciably)”는 그린스펀 의장의 말 한마디로 나스닥지수는 사상 최고의 상승률(10.48%)을 기록했다. ‘그린스펀 효과’가 또 한번 발휘된 것이다. 불행하게도 한국에는 그런 사람을 찾기 힘들다.

이헌재(李憲宰)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한때 그린스펀과 비슷한 역할을 했다. 경제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일관성 있게 기업 금융구조조정을 밀고 나감으로써 그의 말 한마디는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주었다. 이 전장관이 미국의 월가를 방문할 계획을 잡았다가 국내문제로 일정을 취소함으로써 국제적 신뢰를 잃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팀워크 교란’이라는 복병을 만나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진념(陳稔)경제팀은 ‘팀워크’를 강조하면서도 종종 재경부장관과 금감위원장의 목소리가 달라 혼선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시장의 신뢰를 잃고 있는 실정이다. 한 증권사 사장은 “진념 경제팀의 경우 말을 너무 많이 해 시장이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지적했다. 부실은행 처리방식을 놓고 오락가락한다든지, ‘기한 내 완수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는 구조조정 일정이 지연됨으로써 신뢰를 잃고 있다는 것이다.

전철환(全哲煥)한국은행 총재는 아예 역할이 없는 상황. 사실 지금은 통화신용정책이나 재정정책 등 전통적인 거시경제정책으로 해결할 수 없고 구조조정을 통해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에 한은 총재가 나설 여지가 없는 형편이기는 하다.

한은 관계자는 “그린스펀 효과가 발휘되려면 시장참여자들이 정책당국자의 말을 믿어야 한다”며 “최근 들어 시장참여자들이 당국자의 말을 반대로 해석할 정도로 불신이 팽배해 구두개입으로 인한 정책효과는 없다”고 지적했다.

<홍찬선기자>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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