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다]'리눅스전도사' 이만용씨

  • 입력 2000년 12월 1일 15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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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에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복학을 했어요. 그런데 사실 복학하면 학교가 낯설잖아요. 친구들도 별로 없고, 과방에 가면 어린애들만 북적대고…. 그래서 유닉스 컴퓨터실에 붙어 살았어요. 그러던 어느날 후배에게 들은 한마디가 운명을 바꿨죠.”

리눅스코리아의 기술이사 이만용씨. 여드름투성이 얼굴에 약간 장난기가 내비치는 그는 서울대 지질학과 4학년이던 96년 국내 최초의 리눅스 배포판 ‘알짜리눅스’를 만들어낸 인물이다. 젊은 나이지만(30살) 우리나라 리눅스계에선 할아버지뻘인 1세대로 꼽힌다.

한동훈 리눅스코리아 전사장과 함께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리눅스시장을 개척했다는 것이 그에 대한 평가. 당시만 하더라도 생소한 개념이던 리눅스를 지금처럼 ‘누구나 다 아는 용어’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사람이기도 하다. 98년 리눅스코리아를 설립한 후 잠시 다른 업체로 옮겼다 올해 다시 친정으로 돌아왔다.

후배가 던진 말은 “형, 집에서도 유닉스를 쓸 수 있다는 거 알아요?”였다. 눈이 휘둥그레진 그는 당장 그 자리에서 ‘리눅스’란 놈의 존재를 확인했다. 재미없는 학교에 컴퓨터 때문에 ‘맘잡고’ 나오던 그는 그날로 등교를 포기했다. 어릴 때부터 컴퓨터를 만져 좀더 강한 ‘약발’을 고대하던 그에게 있어 리눅스는 정말이지 미세혈관까지 찌릿하게 자극했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며칠 밤을 새웠건만 생소한 프로그램은 그에게 정복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두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머리도 식힐 겸 여름방학을 맞아 당시 유행이던 배낭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마지막 여행지 독일에서 운명은 그를 다시 끌어들였다. 지하철역 신문가판대에서 리눅스 배포판을 팔고 있었던 것. 당장 1카피를 사서 한국에 들어왔다. 이후부터 그는 정말로 리눅스에 미쳐 살았다.

소위 리눅스의 정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그는 약간은 의외의 답변을 쏟아냈다. “저도 오픈소스 운동에는 전적으로 찬성해요. 하지만 MS 같은 상용소프트웨어 제조회사를 무조건 미워해야 한다는 데에는 반대해요. 우수한 인력과 자금을 투입해 물건을 만들었는데 대가가 없어선 안되잖아요.‘수정주의’라고 해야 할까요? 또 부러우면 그만큼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뭐든 좋은 점은 본받아야죠. 극단주의는 모두를 적으로 돌리는 것 뿐이거든요.”

그럼 MS가 적이 아니란 말인가? 의아해하는 기자에게 그는 “저는 MS가 그저 좋은 경쟁자라고 생각합니다. 소비자들이 쓰기 편한 제품을 잘 만들어 내잖아요. 사실 저도 PC게임을 할 땐 윈도를 써요. 리눅스는 아직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하지 않거든요”라고 정리를 해줬다.

MS와의 대결구도 내지는 다소 ‘혁명적인’ 대답을 기대했던 기자는 슬쩍 주제를 바꿨다. 스톨먼 교수와의 ‘아름다운 교분’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이씨는 지난 6월 프리소프트웨어 운동(모든 소프트웨어는 공기와 같은 공공재이며 무상으로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의 기수 리처드 스톨먼 교수가 방한했을 때 자신의 8평짜리 원룸을 내줬었다. 그동안 이씨 부부는 형님집과 여관방을 전전했다.

“행복과 불행이 절묘하게 교차했죠. 평소 존경하던 분을 만나니 무척 좋았어요. 하지만 이양반 성격이 보통이 아니에요. 골수 히피잖아요. 뭐라고 말만하면 10분이 넘게 설교를 하는 거예요. 도와주려고 해도 ‘네가 내가 뭘 원하는지 어떻게 아느냐’ 식이에요. 초여름 더위에도 목욕하는 걸 보지도 못했고…. 며칠이 지났을 때 빨간불에 길을 건너려는 것을 붙잡아 ‘왜 법을 어기느냐, 한국에선 한 국법을 지켜야 한다’며 설교를 퍼부었죠. 멋진 설욕이었어요.”

이씨의 재치있는 대답에 웃음을 보내며 마지막 질문을 했다. 앞으로의 계획이 뭐나고.

“이젠 리눅스 대중화에 대한 역할은 후배들에게 넘기려고 해요. 하지만 리눅스의 국제화에는 계속 관심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좋은 것을 만들어냈을 때 그 혜택을 우리만이 아니라 세계인이 공유하는 것이 더 나으니까요. 일단은 서버와 메인프레임 솔루션기반 연구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또 리눅스로도 충분히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래야 더 많은 기업들이 리눅스 발전에 기여하게 될 테니까요.”

<문권모기자>afric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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