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쟁점토론]대학별 지필고사

  • 입력 2000년 11월 24일 18시 35분


대학의 지필고사 시행을 금지하는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이 21일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뒤 지필고사에 대한 찬반 양론이 뜨겁다. 지필고사 시행을 금지해야 한다는 측은 입시위주 교육의 문제를 해소하고 과외욕구와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 대학별 지필고사는 금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지필고사 시행을 금지하면 안 된다는 측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변별력이 낮고 대학이 객관적 선발기준을 확보하기 어려운 만큼 각 대학이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전형제도를 개발할 수 있도록 대학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찬성/입시 신뢰위해 객관적 평가 필수▼

200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난이도 조절이 잘못돼 평균점수가 10점 가량 높아질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수험생들이 수능을 다시 치러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수능시험은 변별력을 완전히 상실함으로써 소수점 아래 둘째 자리까지를 따져서 합격, 불합격을 판정해야 할 상황이니 사실상 대입 선발기준으로 활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교육 당국은 내친 김에 내년에도 더 쉽게 내겠다고 한다. 더욱이 최근 대학의 지필고사를 금지하는 법령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이제 객관적 선발기준을 잃은 대학은 학생 선발이 난감하게 됐다.

교육부의 대학입시개혁 기본방침은 다양한 선발기준이었다. 수능 지필고사 학교생활기록부 면접 추천서 수상경력 논술 등이 평가자료다. 이들 기준 중에서 객관적이었고, 모두가 평가결과에 수긍했던 것은 수능과 지필고사였다. 다른 기준들은 주관과 자유재량이 개입되기 마련이고 우리 사회의 관습, 정서나 의식구조가 그 평가를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이제 수능의 변별력을 없애고 지필고사를 금지하는 상황에서 야기되는 큰 부작용 세 가지를 꼽아본다.

첫째, 아직 다른 선발기준들이 정착되기 전에 이런 객관적 기준들이 상실됨으로써 입시 불안과 혼란이 야기되고 입시 불신으로까지 확대된다. 둘째, 학력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의 상실로 학력저하가 필연적이다. 이미 고교교육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은 일선 교사들의 한결같은 소리다. 셋째, 사교육비가 더욱 증가한다. 다른 선발기준을 위한 특기과외, 면접과외, 논술과외 등이 불가피하고 이를 위한 과외비는 기본학력을 위한 과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2002학년도 수능의 난이도를 4년 전처럼 평균을 지금보다 100점 정도 낮추거나, 이제라도 다시 지필고사를 허용하면 이런 부작용들은 치유될 것이다. 혹자는 지필고사를 허용하면 예전의 본고사 형태의 문제가 출제되고 교육개혁 이전 상태로 돌아간다고 우려한다. 그렇다고 해도 문제가 없다. 아마 본고사가 있던 시절이 고교 교사와 학생들 모두가 성취욕을 갖고 가장 열심히 노력했던 때일 것이다.

필자의 대학에서는 고교장 추천 전형에서 영어와 수학을 가미한 논술고사를 실시했다.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신뢰를 얻었고 고등학교들로부터도 교육 정상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제도로 평가받았다. 지필고사는 다른 선발기준들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각 대학은 설립취지, 교육목표, 학력수준 등이 모두 제각각이다. 추천전형이 적합한 대학도 있고 특기전형이 알맞은 대학도 있으며 수능에 의한 전형이 제격인 대학도 있다. 필요하다면 대학별 고사를 치를 수도 있다. 적절한 문제 출제로 창의력과 사고력을 평가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정상적인 고교교육을 유도할 수 있다. 대학의 자율과 책임 아래 대학마다 특성을 살리는 전형제도 개발이 가능해야 한다.

김성인(고려대 입학관리실장)

▼반대/과외열풍-공교육 파행 부를수도▼

98학년도 대학입시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쉽게 출제되기 시작했고 올해는 더 쉽게 출제돼 많은 학생과 학부모가 희망을 갖고 있다. 수능이 예상과 달리 쉽게 출제되기 시작한 첫해에 수능 고사장은 전에 없이 활기가 넘쳤다고 한다. 어려운 문제 앞에서 아예 포기하는 학생들은 사라지고, 열심히 시험에 응하는 모습이 아주 좋아 보였다고 들었다. 수능이 쉬워져 대학에 가고 싶어하는 대다수의 학생이 생기를 되찾은 것이다.

올해 수능시험이 너무 쉽게 출제돼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불평은 상위 3∼5%에 해당하는 학생과 이들을 선발하는 대학의 불평으로 보인다. 수능의 변별력을 보완하기 위한 지필고사 실시를 대학의 자율권 행사라는 이름으로 주장하는 대학도 있다. 그러나 대학이 자율권을 주장하기에 앞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것이 있다. 우리의 중등교육은 대입제도에 끌려 다니고 있다. 따라서 대학의 학생선발은 입시위주의 경쟁교육을 극복하고 중등교육 정상화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 시점에서 대학이 학생을 선발하는데 있어 별도의 지필고사로 점수경쟁을 조장하는 방법을 도입한다는 것은 반개혁적 발상이다.

대학은 그 동안 1점이라도 점수가 높은 학생을 별다른 노력 없이 편안하게 뽑았다. 학부모들이 ‘꿈에도 소원은 점수’라고 말하게 된 것도 대학이 시험점수만으로 학생을 뽑았기 때문이다. 이제 대학은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고심해야 한다. 수능과 학교생활기록부만으로도 대학수학능력은 충분히 평가할 수 있다. 수능점수와 학생부 이외에 학생의 잠재능력을 다양한 방식으로 재보고 선발하기 바란다.

일부 학교에서 부풀려 놓은 학생부와 주관적 자료를 대학이 읽어내는 데 고충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객관적 근거인 대학의 지필고사 점수를 선발 기준으로 삼으면서 고교에서 보내온 교육의 결과를 경시한다는 것은 중등교육 정상화에 중대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대학은 학생들의 능력을 신뢰하고 학교에서 보내준 평가자료를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대학이 고등학교를 믿지 못하면 우리 교육은 파행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학부모단체는 오래 전부터 국영수 중심의 대학별고사의 폐지를 주장해 왔고, 이를 국공립대에서 수용한 것을 퍽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그 이유는 시험종류가 많아질수록 학생과 학부모의 정신적 경제적인 부담이 커지고 사교육은 늘어나기 때문이다. 시험이 존재하는 한 사교육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필고사가 실시되면 사교육 시장은 ‘00대 지필고사반’을 공급할 것이고, 교육수요자는 이를 외면하기 힘든 실정이다.

수능시험의 변별력이 정말 문제가 된다면 앞으로 변별력을 조정하면 된다. 대학은 학생을 뽑는 데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잘 가르치기 위한 노력을 해주면 좋겠다. 대학별 지필고사의 도입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풍자(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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