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정원 옹졸하다

  • 입력 2000년 11월 23일 18시 31분


황장엽(黃長燁)씨가 국가정보원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고 해서 국정원이 그를 통일정책연구소 이사장직에서 해임하고 안전가옥에서 나가달라고 통보한 것은 옹졸한 처사다. 황씨와 김덕홍(金德弘)씨는 지난 97년 귀순할 때 정부의 보호를 약속받았기 때문에 그 약속을 철저히 지켜줄 책임이 국가에 있다.

이들에게 국정원 산하 연구소의 이사장과 고문직을 준 것은 예우의 의미라고 보아야 한다. 이들의 견해가 지금 정부정책과 배치된다 해서 그 직책에서 해임하는 것은 생활근거를 박탈하는 것이다. 국정원 산하기관의 간부로 곤란하다면 다른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 정부의 도리다.

설사 그의 대북관이 지금의 남북관계 흐름에 맞지 않는다고 해도 그가 갖고 있는 북한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에 대한 정보를 활용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남한의 어떤 전문가나 정책당국자도 황씨보다 북한에 대한 경험과 정보분석에서 더 앞서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황씨가 가진 그런 자산을 유익하게 활용하는 것이 북한을 상대하는 국정원의 임무가 아닌가.

황씨가 국정원 산하기관의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정부정책과 상반되는 주장을 밖으로 유출시키는 것은 문제라는 게 국정원측 입장인 줄 안다. 그렇다 해도 지금 상황에서 황씨의 신변을 국정원이 보호하는 특별관리체제에서 경찰의 일반관리로 전환하는 것이 보안상 문제가 없는지는 깊이 생각해야 할 일이다. 그의 시각이나 태도가 어떠하든 황씨의 비중에 맞는 신변보호가 이루어져야 한다.

국정원은 두 사람에 대해 국정원의 안가에서 나가달라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이들은 국정원에서 자신들의 활동을 지나치게 제약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명을 낸 것이라며 안가에서 나가라는 것에 대해서는 서운한 감정을 표시하고 있다. 이들은 남한에 올 때 신변안전 외에 북한을 민주화시키기 위한 활동에 대해서도 보장을 약속받았으므로 그것이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정원은 이번 황씨 문제뿐만 아니라 임동원(林東源)원장의 역할에 대해서도 오래 전부터 논란을 일으켜 왔다. 국정원의 본래업무는 북한에 대한 협상보다는 정보수집 및 감시와 위기대처라고 할 수 있다. 정부내 대북대화와 협상을 담당하는 부처는 통일부나 외교부이지 국정원이 아니다. 그런데도 국정원장이 대북협상의 전면에 나서 온 것은 정부정책이 법과 제도가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전형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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