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깊어지는 학문의 위기

  • 입력 2000년 11월 23일 18시 31분


얼마 전 마감된 서울대 박사과정 정시모집에서 사상 처음으로 무더기 미달사태가 빚어져 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대 박사과정 지원자는 전부터 감소 추세를 보여왔다. 그러다 급기야 미달사태까지 빚어진 것이다. 학문의 위기를 걱정하는 소리가 높아가는 가운데 이번 미달 사태는 이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구체적인 근거가 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서울대 이외의 다른 대학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박사과정뿐만 아니라 석사과정 지원자까지 함께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렇게 된 것은 그동안 해외유학이 많이 늘어났고 사회 전반적인 구조조정의 여파로 필요한 사람 위주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기는 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대학원 진학을 기피하는 경향이 확산되는 데 따른 현상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번 모집에서 사회대 인문대 자연대 등 기초학문 분야는 대표적인 비인기 학문임이 여실히 드러났다. 사회대의 경쟁률이 0.46 대 1로 가장 낮았고 인문대가 0.65 대 1, 자연대가 0.84 대 1을 기록했다. 대학원 진학 기피는 해당 전공자들이 그만큼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애써 공부해서 박사학위를 받아봐야 취업이 어렵거나 전공의 활용도가 낮다고 판단한 것이다.

학문의 위기는 대학의 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기초학문은 국가 차원에서 먼 장래를 내다보고 꾸준히 공을 기울여 나가야 할 분야다. 한번 기반이 붕괴되면 나중에 필요하다고 해서 ‘속성’으로 키워낼 수 없는 게 기초학문이기 때문이다. 이번처럼 대학원이 반 공백 상태가 되면 대학의 연구기능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국가경쟁력의 상당부분이 그 나라가 지닌 연구역량에 좌우되는 시대다.

학문의 위기가 초래된 근본 원인을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원래부터 우리 대학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데다 최근 박사학위 소지자 등 고학력자들의 대량 실업사태와 IMF체제 이후의 경제난 역시 한가지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에 못지않게 정부의 학문 정책에도 문제가 있다. 정부가 대학에 돈을 지원할 때 현재의 실용학문 위주에서 벗어나 균형적인 학문발전을 도모하는 쪽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의 힘이 전 학문 분야에 미치지 못한다면 최소한 기초학문만이라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육성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고학력자들의 취업문제에 대해서도 보다 세밀하고 정교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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