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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1월 20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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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임덕을 차기 권력의 인적이동현상이라고 봤을 때 과거 군부독재정권에서는 집권자가 인위적으로 이를 막을 수 있었다. 여권에서는 2인자를 만들지 않고 야권은 탄압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야당 쪽은 말할 것도 없고 여당 내부라 해도 인위적으로 권력이동의 흐름을 막으면 인물도 죽고 당도 살지 못한다.
▼정권 스스로 부른 레임덕▼
민주당 사람들은 요즘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차기 대권은 이미 따놓은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는 말을 종종 한다. 대체로 비아냥이겠지만 거기에는 현정권의 레임덕이 이미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와 초조감이 내포되어 있다. 그렇다고 ‘대통령의 임기가 2년도 더 남은 상황’에서 차기주자 얘기는 입밖에 내기도 어렵다. 그러니 여당의 잠재적 대선후보들은 납작 엎드려 있을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이인제(李仁濟)최고위원이 국민지지도를 내세워 자신이 차기 대선후보가 안되면 ‘불행’이 아니겠느냐고 했고, 이에 대해 김근태(金槿泰)최고위원이 “국민과 당원을 협박하는 거냐”며 반박했을 정도다. 한화갑(韓和甲) 김중권(金重權)최고위원 등이 움직인다는 소리가 들리고 노무현(盧武鉉)해양수산부장관도 장관직에만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튼 늦어도 내년 후반기가 되면 이들이 대부분 권력이동 경쟁의 전면에 나서리라는 것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그때쯤부터는 싫든 좋든 DJ정권의 레임덕현상도 그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이는 당연한 현상으로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다.
걱정되는 것은 DJ정권이 전혀 바람직하지 못한 레임덕현상, 즉 권력이 도덕적 권위를 잃으면서 리더십이 약화되는 ‘최악의 레임덕’에 직면하고 있는 점이다. 소수정권의 어려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DJP연합에서 비롯된 정체성의 혼돈과 지역감정의 벽이 국정운영에 악재로 작용한다는 주장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의 레임덕현상이 이런 ‘상수(常數)의 한계’에서 온 것은 아니다.
레임덕은 정권이 스스로 부른 것이다. 며칠 전 국회에서 검찰 수뇌부 탄핵안을 실력저지로 무산시킨 것은 그 대표적인 예다. 한마디로 민주당은 국회법의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집권세력이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공공 및 민간부문의 도덕적 해이나 집단이기를 탓할 수는 없다. 기업의 구조조정과 노동자의 인내를 요구하기도 어렵다. 사정(司正)을 외쳐봐야 영(令)이 설 리가 만무하다.
그뿐인가. 옷로비사건에서부터 최근의 한빛은행 부정대출, 동방금고사건 등에 이르기까지 권력내부의 비리 및 관련 의혹이 말끔히 가셔지지 않는 한 부패방지법을 백번 제정한다고 해도 부패를 뿌리뽑을 수는 없다. 이 모든 도덕적 권위의 상실이 오늘의 레임덕현상을 자초한 셈이다.
▼ ‘私的 정치’의 틀 깨야▼
스스로 부른 레임덕을 극복하려면 무엇보다 ‘DJ 사적(私的) 정치’의 틀을 깨야 한다. 이 정부의 인사는 개혁적이지도 못했고 지역탕평에도 실패했다. 통계에는 잘 잡히지 않는 지역편중인사가 국민통합을 결정적으로 무너뜨렸다. 좁은 인재풀에서 가신이 득세하고 정당은 무력한 가운데 민의는 제대로 수렴되지 못했다. 제도와 시스템 위에 군림하는 ‘사적 정치’가 낳은 폐해다. 자칫 반세기만에 이룬 여야(與野) 정권교체의 역사적 의미마저 이 폐해의 쓰레기더미에 묻힐 판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이제 민주당 총재직에서 물러나 집권여당을 살려야 한다. 더 이상 기만적인 DJP공조에 연연해선 안된다. 국회의 독립성과 검찰의 중립성을 보장해야 한다. 그런 뒤 남북문제와 경제살리기에 전념해야 한다. 그래야만 너무 빨리 찾아온 레임덕을 극복할 수 있다. 정권재창출은 그런 다음 국민의 선택에 맡기는 것이 순리다. 이것은 한 정권의 문제가 아니다. 나라의 앞날이 걸린 문제다. 우물쭈물 시간을 끌 여유가 없다. 적당히 넘어가려 해서는 더욱 안된다. 그러다가는 레임덕만 가속화할 뿐이다.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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