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사람세상]가수 김장훈 "은퇴후 바둑살롱 열겁니다"

  • 입력 2000년 11월 14일 18시 25분


90년대 초반 무명 가수였던 김장훈은 서울 대학로 근처 카페에서 라이브 공연 아르바이트를 했다. 라이브 공연이 시작되는 저녁 때까지 시간을 때우기 위해 꾸역꾸역 찾아가던 곳은 대학로 근처 한양기원. 소소한 내기바둑을 둬 돈을 따면 그날 저녁은 삼겹살로 포식하고, 잃으면 라면을 사먹어야 했다. 그는 ‘돈도 궁하고 인기도 없었으나 노래와 바둑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던 그 시절만큼 행복한 때가 없었다’고 말한다.

체크 무늬 빨간색 치마를 들어올리며 ‘오페라’를 부르고 TV나 라디오 초대손님으로 나와 타고난 입심으로 좌중을 휘어잡는 그가 바둑광이라는 사실은 언뜻 믿기 힘들다.

그러나 그는 프로기사들을 가까운 곳에서 보기위해 한국기원 단골 중국집의 ‘철가방’을 꿈꿨을 정도로 바둑을 좋아한다.

바둑에 관한 지식 역시 보통 수준이 아니다. 언제 어느 대회라고 운을 떼면 언제 누가 이기고 졌는지를 훤히 꿰뚫고 있다. 지난해 삼성화재배에서 이창호 9단이 2대 2 동률에서 마샤오춘 9단을 누르고 우승했을 때 그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내내 바둑 얘기만 했다고 한다.

“바둑 인구가 1000만명이잖아요. 이창호가 국제기전에서 져봐요. 그러면 대한민국 국민 1000만명의 기분이 나쁠 것 아니예요. 그걸 기분 좋게 만들어놨으니 대단한 일을 한거죠.”

초등학교 3학년 때 동네 세탁소 아저씨에게 24점을 놓고 배운 바둑이 이젠 아마4단의 짱짱한 실력이다. 올 추석 때 케이블 바둑TV에서 특집으로 마련한 김효정 2단과의 특별 대국에서 다섯점을 놓고 완승을 거뒀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바둑기사는 조훈현 9단. 98년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그에게 사인을 부탁하자 정성스럽게 사인을 해주는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아 그도 팬 사인에 정성을 다한다.

그는 가수 은퇴후 바둑살롱을 여는 것이 꿈이다. 한쪽 벽면에는 자신의 대형 콘서트 사진을 걸어놓고 다른 벽면에는 조훈현 이창호와 함께 찍은 사진과 사인을 걸어놓고 싶기 때문이다.

“바둑을 업으로 삼았다면 이렇게까지 좋아하진 못했을 거예요. 바둑은 내 평생의 동반자가 된 거죠.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바둑을 두면 마음이 평안해져요. 제 신부감도 바둑을 둘 줄 알았으면 정말 좋겠어요.”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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