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A선택2000]美 선거인단제도 비판여론 확산

7일 실시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자가 가려지지 않아 최후의 승부처인 플로리다주에서 재검표가 진행되면서 미국이 건국 이후 초유의 정치적 혼미로 몸살을 앓고 있다.

유권자와 정치권은 무엇보다 출구조사를 토대로 민주당 앨 고어 후보의 플로리다주 승리와 공화당 조지 W 부시 후보의 당선 확정을 성급하게 보도했다가 취소함으로써 혼란을 부추긴 언론매체에 대해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8일 CNN방송에 출연한 한 선거전문가는 “내 견해를 밝히기에 앞서 엉터리 보도로 유권자를 어지럽게 한 언론이 사과해야 한다는 점을 먼저 지적하고 싶다”고 일침을 놓아 잘못을 저지른 CNN측을 당혹스럽게 했다. 미 언론매체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여론조사와 출구조사를 실시해 개표 결과를 예측했으나 경합이 너무 치열해 판세를 정확히 짚지 못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여론은 쉽게 수긍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들쭉날쭉 하는 후보별 지지도 통계로 구설수에 올랐던 여론조사 전문기관도 망신을 당했다.

투표 직전 여론조사에서 뉴스전문 케이블TV MSNBC와 로이터통신, 여론조사전문기관 조그비가 공동 실시한 여론조사만 고어가 지지도에서 부시를 앞설 것이라고 예상했을 뿐이다. 유명한 갤럽이나 다른 조사기관은 모두 한결같이 부시의 우위를 점쳤다.

이번 사태를 가져온 근본적인 원인이 미국의 복잡한 대선 제도, 특히 선거인단제도에 있다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고어 후보는 전국득표율에서는 앞섰으나 주별 선거인단 확보에서 뒤졌다. 직접투표 형식을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생긴 것이다.

고어 후보는 8일 대선 제도는 현행 헌법에 따라 유지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200여년 전인 1787년에 도입된 선거인단 제도가 과연 현 상황에서도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다. 오리건주의 일간지 ‘디 오리거니언’ 인터넷사이트에서 네티즌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현재의 선거인단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3분의 2인 67%에 이르렀다.

미 언론은 무엇보다 오리무중(五里霧中)의 대선 정국에 관해 우려하고 있다.

컴퓨터 투개표 등 기술적인 면에서 세계 최첨단인 미국에서 투표 후 열흘 가까이 지나야 대통령 당선자를 알게 된다는 게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번 대선을 통해 미국 사회가 지역 계층 등에 따라 양분될 수 있음이 확인된 데 대해 충격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백인 중심의 동부, 중부 지역과 소수인종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표가 나뉜 것은 성조기 밑에 하나로 뭉치는 미국의 장점이나 연방국가의 일체감을 훼손했다는 분석도 있다. 지역분할 구도나 인종 장벽이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라는 위기감도 있다.

또 7일 대선과 함께 실시된 의회 선거 결과 공화당이 상하원을 계속 장악하게 됐지만 민주당과의 의석 차는 이전보다 좁혀져 앞으로 당쟁이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누가 대통령이 되든 의회와의 관계가 불편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어 미국인들을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플로리다주에서 현재까지 표를 더 많이 얻고 있는 부시 후보가 8일 “대통령이 되면 나를 지지하지 않은 사람을 포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 것도 이를 염두에 둔 것. 이번 대선 파문은 새 대통령이 확정되면 차츰 진정될 것으로 보이나 상당한 후유증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