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A선택2000]'플로리다 드라마'에 숨죽인 지구촌

  • 입력 2000년 11월 8일 23시 06분


‘고어 유리→부시 유력→부시 당선 확정→부시 당선 확정 정정, 아직도 접전.’

7일 오전6시(한국 시간 7일 오후8시, 이하 한국 시간) 투표가 치러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종 투표 결과의 뚜껑이 열리지 않은 채 미결로 남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특히 이날 투개표 상황을 생중계하던 미 TV방송들조차 수차례에 걸쳐 판세를 뒤집었으며 결국 ‘부시 당선 확정’이라고 보도한 뒤 잠시 후 이를 정정하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이날의 승부처는 역시 그동안 최대 접전지로 예상됐던 플로리다주였다. 유세전에서도 40년만의 살얼음판 접전을 벌여 왔던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와 앨 고어 민주당 후보는 개표전에서도 명승부를 연출하며 보는 이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잇단 정정 소동을 부른 플로리다주〓미 TV방송들은 먼저 부시 후보와 고어 후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선거인단 확보 경쟁을 벌이던 오전 10시경 출구 조사를 토대로 플로리다에서 고어가 승리했다고 보도했다.

50개주에서 4번째로 많은 25명의 선거인단을 보유하고 있는 플로리다는 펜실베이니아(선거인단 23명)와 함께 미 대통령 선거 당락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칠 경합 지역으로 손꼽혀 왔다. 캘리포니아(54명)와 뉴욕(33명), 텍사스(32명)의 경우 플로리다보다 선거인단 수는 많지만 고어(캘리포니아, 뉴욕)와 부시(텍사스)의 확실한 지지 지역으로 갈려 있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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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어와 부시 후보 양측 모두 선거 유세 기간 내내 플로리다 공략에 심혈을 기울여 왔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방송사들의 출구 조사가 나오자마자 부시후보측은 “고어후보쪽의 손을 들어준 조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 경합 지역으로 분류해 달라고 거세게 항의했다.

부시 후보는 플로리다에서의 패배 소식을 접한 뒤 텍사스 주의사당 앞에 임시로 마련한 연단에서 선거 종료 소감을 밝히려던 당초 계획을 취소하고 항의의 표시로 주지사 관저로 돌아가기도 했다.

CNN 등 방송사들은 결국 부시 후보측의 요구를 받아들여 두시간여 뒤인 이날 정오경 플로리다주를 경합주로 수정 발표했고 이 때부터 서서히 대세는 한때 밀리는 듯한 부시 후보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테네시주 내슈빌의 고어 진영에서는 192명까지 올라갔던 선거인단 확보 숫자가 167명으로 밀리면서 부시측에 역전을 허용하자 시무룩해진 반면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부시 진영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후 수차례에 걸쳐 엎치락뒤치락 역전극을 펼친 부시 후보와 고어 후보의 선거인단 확보 숫자는 오후 4시 현재 고어 249 대 부시 246. 당선을 위해 필요한 선거인단 수는 270명. 25명의 선거인단이 걸려 있는 플로리다가 당락을 결정하는 순간까지 온 것이다.

95% 개표의 상황에서도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던 숨막히는 접전은 오후 4시25분경 부시 후보가 플로리다에서 승리, 당시까지 결과가 나오지 않았던 위스콘신과 오리건주의 개표 결과에 상관없이 당선이 확정됐다고 CNN이 긴급 보도하면서 끝이 나는 듯했다.

▽세계적인 혼란〓미 방송과 통신사들이 부시가 승리했다고 보도했다가 이를 다시 정정하는 등 해프닝이 벌어지자 두 후보는 물론 각국 정부와 언론도 큰 혼란에 빠졌다.

고어 후보도 부시 후보에게 전화를 걸어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며 국정에 협력할 것이라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약 1시간30분 뒤인 오후6시경 “플로리다주의 개표가 계속 진행중이며 아직 부시 후보의 당선을 확정지을 수 없다”는 내용의 정정 보도가 나갔다.

플로리다 선거관리위원회 관리들은 “이날까지 도착한 부재자 투표를 포함해 100% 개표가 완료됐으나 아직 도착하지 않은 부재자 투표가 남아 선거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다”고 반박 자료를 낸 것.

이들은 “투표일인 7일자 소인이 찍힌 부재자 투표 우편용지가 도착할 때까지는 최대 10일 정도가 소요되고 앞으로 도착할 법적 효력을 가진 부재자 투표수는 5000여표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17일은 돼야 당선자가 확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CNN방송 등 미국 언론들은 결국 ‘부시 후보가 승리한 지역’으로 분류했던 플로리다주를 경합주로 일제히 수정했으며 두 후보의 선거인단 확보 숫자도 249(고어) 대 246(부시)으로 되돌려 놓았다. CNN 화면의 판세 분석 지도에서 플로리다에 칠해졌던 붉은 색(부시 승리)도 어느 새 옅은 갈색(경합주)으로 변했다.

이에 따라 고어 후보측은 부시 후보에 보낸 당선 축하와 패배 인정 의사를 철회한다고 발표하는 초유의 상황이 빚어지기도 했다. 일본의 요미우리(讀賣)신문은 부시 후보의 당선을 알리는 호외를 배포했다가 긴급 회수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한국 독일 러시아 중국 인도네시아 영국 등 각국 정부도 부시 후보에게 축전과 함께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가 이를 서둘러 취소했다. 독일의 요하네스 라우 대통령은 부시 후보에게 “차기 정부에서도 양국 관계가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가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축전을 직접 보냈다가 황급히 철회했다. 압두라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부시 후보가 고어 후보보다 대통령으로서 더 적합한 인물이라는 섣부른 발언을 하기도 했다.

고어후보는 이어 플로리다주의 재개표를 요구했으며 플로리다주 법무장관과 국무장관은 두 후보간의 득표 차이가 ‘0.5%미만’이기 때문에 주법에 따라 자동적으로 검표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부시와 고어후보는 결국 며칠이 걸릴지도 모르는 검표와 부재자투표 개표 완료를 피말리는 심정으로 초조하게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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