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보기자의 반집&한집]이세돌 "형과 대국 승부욕 안나…"

  • 입력 2000년 11월 7일 19시 33분


◆ 첫 형제대결 SK배 결승

최근 SK배 신예10걸전 최종 결승국이 열린 서울 한국기원 특별대국실. 시퍼런 칼날을 마주한 무사의 대결장처럼 살벌한 정적이 감돌아야 할 이곳에 훈훈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점심 휴식시간이 마치고 5분여간의 사진 촬영이 끝난 뒤 카메라 기자들이 모두 나가자 이상훈 3단이 담배를 빼어 물었다.

그가 ‘후’하고 내뿜는 담배 연기속에는 안도의 한숨이 담겨 있었다.

마주앉은 이세돌 3단. 불리하다는 검토실의 평가와는 무관하게 평온한 얼굴이었다. 몇 수가 쓱쓱 두어지더니 이세돌 3단이 말을 건넨다.

“이게 완전히 헛수였어.”

돌을 던진 것. 결승전 사상 최초의 형제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SK가스배는 형 이상훈 3단의 품에 안겼다. 초반 좌상귀를 댓가없이 잡은 흑이 절대 유리한 상황에서 2, 3차례 결정적인 실착을 한 것.

보통 이긴 자의 상기된 기쁨과 진 자의 진한 아쉬움이 교차하는 복기 때도 연습바둑 복기하듯 오손도손 의견을 주고 받았다.

“동생과 결승전을 두면 편안할 줄 알았는데 마주앉고 보니 부담이 컸다. 동생의 부담이 더 컸을 것이다. 결승 3판 모두 내용이 좋지 않았다. 동생이 2개 기전 결승전에서 우승할 것으로 믿는다.” (형 이상훈 3단)

“형과의 대국이라 승부욕이 나질 않았다. 꼭 이겨야겠다는 굳은 결심이 들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봐준 건 아니지만….”(동생 이세돌 3단)

맥빠진 결승전이 된 데에는 우승과 준우승의 상금 차이가 300만원 밖에 나지 않는 것도 한 요인이었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반전무인(盤前無人). 형제간의 우애보다 누가 앞에 앉더라도 혼신의 수읽기와 땀내배인 행마로 명국을 남기고자 하는 프로기사의 자세가 아쉬운 대국이었다.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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