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의 대중문화 째려보기]음란한(?) 작가, 장정일형께

  • 입력 2000년 11월 6일 17시 30분


작년 겨울이었습니다. 갑자기 형이 전화를 걸어와서, '중국에서 온 편지'의 해설을 쓸 수 없겠느냐고, 이건 꼭 김형이 써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했었지요. 모던보이 장정일은 역사소설을, 그것도 진시황과 그 아들 부소의 이야기를 어떻게 쓸까 궁금했기에, 일단 소설부터 보자고 했습니다. 소설 한 권이 한 문단으로 이루어진 희한한 소설을 세 시간 동안 완독한 후 저 역시 하루만에 해설을 완성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해설을 이 메일로 보내고 다시 전화를 받았을 때, 형과 저는 '내게 거짓말을 해봐'에 대해, 마치 오래 전에 끝난 일을 회고하듯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그때 형이 그랬습니다.

"김형, 그 소설 내가 깜빵에 갈라꼬 일부러 그렇게 쓴 겁니데이."

감옥에 가려고 일부러 그렇게 음란하게(?) 소설을 썼다는 형의 주장은 오랫동안 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3년이 넘도록 받은 고통과 상처를 저런 식으로 감추려는 것일까? 그러나 이 세상에 감옥에 가려고 소설을 쓰는 소설가가 어디 있단 말인가? 방어기제치고는 너무나도 유치한 방어기제가 아닌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는 그런 소설이 결코 법적으로 용납될 수 없음을 미리 짐작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썼다는 표현일까? 최악의 경우 감옥에라도 들어갈 수 있음을 예측했다는 뜻일까?

혹자는 장선우 감독의 영화 '거짓말'과의 형평성 문제를 끄집어내기도 하고, 또는 이 소설의 완성도가 장정일의 다른 소설들에 비해 떨어진다는 비판을 펴기도 합니다. 나름대로 근거도 있고 논리도 선명한 주장들이겠지요. 허나 저는 장정일형의 작품을 읽고 또 형의 철 지난 운동화를 볼 때마다, 내 젊음의 한 극단을 엿봅니다. 불온하게도, 그 극단이 언제까지나 극단이기를 바랍니다.

박노해와 장정일!

80년대 문학의 두 극점이지요. 이성복, 최승자, 황지우 등 뛰어난 시인들이 많이 배출된 80년대지만, 박노해와 장정일은 나와는 전혀 다른, 내가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세계를 펼쳐보인 시인들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법의 이름으로 심판을 받고 감옥에 다녀왔군요. 이렇게 반문할 분도 있을 겁니다. 이 사회의 변혁을 위해, 민주주의와 자주통일을 위해 최선봉에서 노력한 시인 박노해와 모던보이 장정일이 어찌 맞먹을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80년대 변혁운동에 대한 모독이다. 오래 전부터 문학동료들에게 그 비슷한 비판을 받아왔지요. 너는 왜 장정일에게 그토록 집착하는가? 저의 첫 비평을 비롯하여 제가 형에 관해 쓴 글이 네 편이 넘으니 집착은 집착인가 봅니다.

제가 계속 형을 주목했던 이유는 이 사회를 지탱하는 기반을 향한 형의 거침없는 야유와 철저한 비난 때문이었지요. 형은 관념으로만 반골이 아니라 몸과 마음 전체가 철저한 반골이었던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많은 소설가와 시인들 중에서 그 누구도, '싸움질을 하고 피에 묻은 칼을 씻고 나서 뛰는 가슴으로' 책을 읽거나, 그 책을 '소년원 문을 나서며 옆구리에 수북이 끼고 나온'('삼중당 문고') 적은 없습니다. 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부랑아들, 거지와 도둑과 사기꾼이면서 또한 문학에 순교하는 쟝 쥬네같은 이가 꼭 유럽에만 있으란 법은 없지 않겠습니까?

대법원 재판부는 '문학작품이나 예술작품에 문학성이나 예술성이 있다고 해서 그 작품의 음란성이 당연히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장정일형의 문학세계를 조금이라도 접해본 사람이라면, 장정일형이 지은 시와 소설의 문학성이나 예술성이 바로 그 음란성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눈치챌 수 있을 것입니다. 더럽고 야하다며 욕하고 침 뱉으면서 작가를 감옥에 가두고 작품을 압수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작가 장정일의 눈에 비친 '천민' 자본주의의 실상이니 어찌하겠습니까?

장정일형!

제가 형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더욱 음란한 작가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번 일은 형의 작가적 여정에서 그저 작은 훈장일 따름입니다. 형의 등장인물들은 이미 오래 전에 침대에서 질펀한 섹스를 나누며 법원의 선고를 흉내내었으니까요. 탕-탕-탕!

소설가 김탁환 (건양대 교수)tagtag@kytis.ko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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