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현의 바둑세상만사]반집, 그 다음 영역은?

  • 입력 2000년 11월 6일 13시 44분


바둑은 먼저 두는 흑이 아주 유리하다. 이를 선착의 이익이라고 하는데, 흑은 이를 이용해 초반에 두고 싶은 자리를 마음대로 둘 수 있다. 뒤따라 둬야 하는 백은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이 불리함을 보상해주고 바둑을 공평한 게임으로 만들기 위해 생각해낸 것이 덤 제도이다.

옛날 바둑에는 덤이 없었다. 승부가 비기면 그냥 비긴 것으로 처리했다. 그러나 현대바둑으로 오면서 프로기사 제도가 뿌리를 내리고, 신문 기전 등의 등장으로 승부를 공정히 가려야 하는 일이 생기면서 덤이 탄생했다.

덤제도는 일본의 마이니치 신문사가 1939년 혼인보전을 개최하면서 처음으로 도입했다. 그러나 바로 한 해 전 슈우사이 혼인보의 은퇴기전에서 4집의 덤을 적용했다는 걸로 보아 공식기전에서의 덤은 아마 이 대국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신문사 주최 혼인보전의 덤은 처음에 4집이었는데 곧 4집 반으로 바뀌었다. 이후 일본에서1953년 왕좌전을 개최하면서 5집 반의 덤을 도입하였고, 한동안 4집 반과 5집 반을 이중 적용하다가 이제는 대부분의 기전에서 5집 반의 덤을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7년 SBS배 연승바둑최강전에서 6집 반의 덤을 도입한 이후, 지금은 거의 모든 기전이 6집 반의 덤을 채택하고 있다.

덤을 몇집으로 하는 것이 공정한가는 사람에 따라 여러 주장이 있고 바둑으로 생활하는 프로기사들은 덤의 변화에 아주 민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덤에 관한 시각은 이미 고인이 된 대만 잉창치 씨의 시각이 아주 독특하다. 그는 종전처럼 선착의 이익을 따져서 덤을 계산하지 않고 과거에 두어진 수천대국의 승부결과를 통계내어 8집(우리식으로는 7집 반)이란 덤을 정했다. 덤이 8집이었을 때 흑백의 승부 결과가 50퍼센트에 가장 근접한다는 주장이었다. 그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덤은 현대로 오면서 점차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참고로 현재 중국은 5집 반, 대만은 8집의 덤을 적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덤 제도의 도입은 바둑판 위에 반집이란 새로운 개념을 가져왔다. 반집! 과거에는 없던 개념이었다. 반집의 도입으로 바둑을 보는 눈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 해도 심한 표현은 아닐 것이다.

반집은 바둑판 위에 존재하지 않는 집이다. 수학으로 치면 허수이다. 유령과 같은 존재다. 바둑판 어디를 뒤져봐도 반집은 찾아낼 수 없다. 우리가 흔히 반패라는 것도 최종적으로 잇고 나면 한집으로 계산되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반집이 이제 승부를 가르는 심판자로 바둑판 위에서 대국자를 굽어본다. 한집 반은 실력이지만 반집은 운이라는 말이 실감나게 들릴 정도로 반집은 경외의 대상이었다. 바둑승부가 반집차로 좁혀지면 대국자는 결과를 예측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신의 영역이라는 이 반집을, 그런데 이창호 9단은 종종 정확하게 계산해낸다. 그는 도대체 두뇌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 사람일까? 펜티엄 쓰리 컴퓨터를 훨씬 능가하는 빠르기와 정밀도의 연산처리 능력을 지녔다고 해야할지......

컴퓨터가 발전하듯이 앞으로 바둑계에 이창호의 계산능력을 능가하는 슈퍼컴퓨터가 등장한다면 이 신동은 그보다 더 정확한 계산능력을 선보일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아직 모르는 바둑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줄 것인지, 이래저래 궁금하기만 하다.

김대현 <영화평론가·아마5단> momi21@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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