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규민/관음증

  • 입력 2000년 11월 5일 19시 15분


낯모르는 성인남녀들이 격리된 공간에서 100일 동안 함께 생활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들의 실생활 모습이 속속들이 텔레비전으로 중계된다면 시청자들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장면은 무엇일까. 이런 궁금증을 단번에 해소시켜준 이벤트가 작년 네덜란드 케이블TV사에 의해 실행됐다. 참가자 중 일부가 서로 눈이 맞아 불을 끄고 벌인 사랑의 행위는 적외선카메라로 적나라하게 중계됐는데 시청률은 이 때 최고치를 기록했다.

▷관음증(觀淫症)은 인간만이 갖고 있는 특수한 심리증세라고 한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사회를 조직하고 집단생활을 하다 보니 개개인의 원시적 본능은 억제되어야만 했다. 남의 눈 때문에 억압되어 온 감정이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몰래 들여다 보면서 해방감으로 전이돼 나타나는 것이 관음증이라고 하던가. 어떤 심리학자는 인간만이 갖고 있는 호기심이 관음증의 원인이라고도 분석하는데 그렇다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든 사람이 이 증세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인터넷을 통해 해괴한 합성사진이 시중에 퍼졌다. 수영복 입은 미스코리아를 투시카메라로 찍은 것이라고 해서 화제가 됐지만 전문가들의 분석결과는 명백한 가짜였다. 문제는 가짜인 것을 알면서도 사진을 찾는 노력들이 계속된다는 점이다. 상상하고 있는 미스코리아의 수영복 속 모습을 비록 가짜지만 합성사진을 통해 확인하고 싶어하는 마음 때문으로 짐작되는데 바로 그것이 관음증의 대표적 증상 중 하나다. 이번에도 그랬지만 당사자들의 피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을 저지른다는 점도 관음증 환자들의 전형적 행태다.

▷인터넷의 발달로 관음증은 집단화의 길에 들어섰다. ‘오양 비디오’나 ‘빨간 마후라’ 등은 그 전파속도나 확산범위에서 디지털의 위력을 확인해준 대표적 관음대상물들이다. 인터넷은 제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사회의 집단관음증은 하루가 다르게 그 증세가 심화되고 있다. 우리 모두가 관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아슬아슬하기조차 한 느낌이다. 그러나 그 보다 더 큰 문제는 사회가 이미 이 문제에 집단 불감증까지 걸려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이규민논설위원>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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