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엄마의 와우! 유럽체험]신기한 나라의 앨리스

  • 입력 2000년 11월 3일 13시 37분


스위스는 참 신기한 나라. 그중 베스트를 꼽으라면 청소라는 이름의 범국민 운동을 들겠습니다. 아니, 무슨 쓸고 닦는 일에 목숨을 걸었는지... 흰색 페인트, 흰색 가구 일색인 스위스의 사무실과 관공서. 하루에도 두 세번씩 비가 오는데도, 창틀의 블라인드, 유리창, 차양을 매일 청소하는 바지런함에는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실제로 슈퍼마켓에 가보면 각종 크기의 수납 박스와 바구니를 팔고 있죠. 그들에게 있어 무질서, 불결은 게으름 더하기 죄악 정도로 취급을 받는 것 같습니다.

취리히 중앙역의 화장실은 호텔급이죠. 간단한 볼일 보는 화장실은 1프랑, 다른 볼일까지 보는 곳은 2프랑. 한 사람이 일 마치고 나오면, 즉시 청소부가 일회용 소독용지로 쓱쓱 닦고 물까지 다시 한번 내린 다음, 다음 손님을 들여보내는 최첨단(!) 시스템입니다.

일년 내내 가축 기르는 농가를 가보아도, 흐트러진 살림살이를 늘어 두지 않습니다. 스위스 농가의 별난 결벽성 덕분에, 유명한 관광상품이 된 것이 바로 지푸라기 민박. 침낭 하나만 들고 오면, 부드러운 건초 더미 위에서 하루 밤을 묵어갈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스위스 관광청의 히트상품.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이 하이디의 침대에서 추억의 밤을 보내기 위해 몰려듭니다. 깨끗한 지푸라기 침대에 평온한 아침 식사까지 2만원 정도에 해결할 수 있으니, 배낭여행객 여러분,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연락처가 궁금하시면 나우엄마에게 메일을!

말이 난 김에, 이곳 스위스에서 참 신기했던 몇 가지만 더 풀어 볼까요. 이곳 아이들, 정말 신기합니다. 워낙 저조한 출산율 때문에 아이들 구경하기가 힘든 게 이곳 현실이지만, 그나마 있는 아이들도 참 기특하게 길들여져 있거든요. 바닥에 뒹굴며 생떼를 쓰는 아이들도, 그래 알았다며 역성 들어주는 부모도 보이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부모의 지배하에 있으면서, 최대한의 자유를 누린다는 이율배반의 진리를 그 나이에 어찌들 아는지요. 특히 백화점 같은 데 가보면, 어디 감히 부모가 쇼핑하는데 애들이 방해를 한단 말입니까? 지네들끼리 매장에서 마련한 큰 인형쿠션을 껴안고 뒹굴뒹굴하던지, 매장의 장난감 가지고 놀던지, 간간이 설치된 비디오 스탠드에서 영화를 감상하던지, 아니면 어린이 소파에 몸을 푹 기대고 의젓하게 책을 보던지. 그것도 싫으면 고무 젖꼭지 빨며 잠들던지... 기 세기로 유명한 한국 아이들, 스위스에서 극기훈련 한번 받으면 어떨지...

스위스 전국을 휩쓰는 강아지 숭배사상도 신기합니다. 한국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몸 바쳐(!) 충성해야 하는 비운의 견공들. 그러나 스위스 그 평화의 땅을 밟는 순간, 개는 조깅과 하이킹을 즐기는 레저의 파트너요, 인생의 동반자로 둔갑합니다. 심지어, 개가 달리며 내놓는 것들까지도 인간이 졸졸 따라다니며 검은 비닐에 주워 담는 진풍경! 사철탕의 공포에 시달리는 한국 견공들이 취재를 나올 만한 선진국 사례가 아닙니까? 아, 왜 개똥을 주워 담느냐구요? 자기 식솔의 쓰레기를 말끔히 수거해 가라는 게 시의 방침이라는데, 생명존중 교육자 페스탈로치의 후손다운 정책입니다.

부자들은 부자가 되는 습관을 가졌다는 말 있죠. 남이 보든 안보든 내 양심대로 산다는 스위스인들. 진짜 양심냉장고 감이죠. 한 예로 우리가 살고 있던 6 층짜리 아파트 지하에 세탁기가 딱 한 대 있었거든요. 총 스물네 가구가 한 대의 세탁기를 같이 사용하는데, 단 한 건의 문제도 없었답니다. 비결은 간단한 게임의 법칙에 있죠. 우선 빨래를 가방에 담아 내려갑니다. 마침 다른 사람의 빨래가 돌아가고 있으면 그 곁에 빨래가방을 놓아 찜을 해놓고 돌아갑니다. 빨래를 마친 앞사람은 자기 빨래를 꺼낸 후, 뒷사람 빨래와 세제까지 넣어 돌리고 올라갑니다. 그 다음 사람도 그대로 반복하는 거죠. 하라 마라, 왜 안 하냐, 멱살 잡고 소매 걷을 일이 없고, 사회 전반이 이렇게 소리 없이 팽팽 잘 돌아가고 있으니, 그들이 잘 사는데는 다 이유가 있어 보이는군요.

인권의 나라 스위스. 기본은 철저한 남녀평등의 원칙이죠. 일년에 몇만명의 여아가 조용히 사라진다든가, 딸을 낳으면 엄마가 운다든가, 그 딸이 자라 결혼을 하고, 명절이 되면 엄마 대신 어머님에게 가서 삼일 동안 설거지를 한다든가, 그 삼일동안 남편은 누워 텔레비젼 보다, 먹다, 자다를 반복한다는 이야기가 사실이냐며 신기해합니다. 그 대신, 잊지 말아야 할 것 하나. 이곳에서는 남녀 구분없이 치열한 경쟁의 현실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죠. 그리하여, 시드니 올림픽 철인경기에서 우승한 스위스 아줌마도, 산악자전거로 알프스를 누비는 할머니도, 무한 체력을 요구한다는 정형외과 병동을 채운 여의사들도 모두 메이드 인 스위스입니다.

나우엄마(nowya2000@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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