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하면된다>돈에 돈 가족들의 보험 사기극

  • 입력 2000년 10월 23일 15시 09분


<하면된다>를 연출한 박대영 감독은 "조금 긴 만화책을 읽는 것처럼 이 영화를 봐달라"고 말했다. 괜한 비평의 잣대를 들이밀지 말고 낄낄거리며 영화를 봐달라는 부탁성 발언이다.

사실 <접속> <조용한 가족>의 조연출, <연풍연가>의 연출을 맡았던 박대영 감독은 성향이 불분명한 연출자다. 그의 손을 거쳐간 <접속>과 <연풍연가>는 현실의 호흡이 들어가지 않은 예쁜 그림 엽서 같은 멜로였고, <조용한 가족>은 냉혹한 풍자가 살아있는 엽기 코미디 영화였다.

<하면된다>가 이 세 편의 영화 중 어떤 피를 수혈 받았는지는 자명하다. <하면된다>는 <조용한 가족> 류의 엽기 코미디를 표방한 일명 '웃기는 영화', 현실성의 잣대론 해부할 수 없는 만화와 영화의 중간 버전이다.

그러나 <하면된다>는 절대 아무 생각 없이 웃기기만 하는 영화는 아니다. 70년대 박정희 정권의 캠페인 구호를 제목으로 내세운 이 영화는 고도의 경제성장을 향해 달려온 한국의 지난 반세기를 풍자한다. 어떻게 버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버느냐가 중요하게 치부됐던 시대. <하면된다>의 가족들이 찾아낸 돈벌이 수단은 <웨이킹 네드>의 할아버지들이 그랬듯, 보험 사기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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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실패 후 달동네로 이사간 정씨(안석환) 가족. 앞길이 막막했던 정씨 가족은 그러나 우연히 타게된 보험금 덕분에 과감히 앞으로의 살길을 정하게 된다. 그들이 찾아낸 살길이란 바로 보험 사기극이다. 정씨 가족에게 보험은 복권보다 멋진 매력을 지닌 자본주의 최고의 발명품이다. "복권에 당첨될 확률은 적지만 보험금을 탈 확률은 많다"는 게 이들 보험예찬론자 가족의 지론이다.

얼뜨기 가장 정병환(안석환), 말끝마다 하나님을 찾는 엄마 원정림(송옥숙), 귀엽고 예쁜 외모로 보험 사기극에 공헌하는 딸 정장미(박진희), 재수생 아들 정대철(정준). 이들 네 사람은 네 명의 정예부대로 만족하지 않고 곧 새로운 가족 사기단원을 영입한다. 전 보험회사 감찰 직원으로 근무했던 심충언(박상면). 우여곡절 끝에 장미의 남편이자 정씨 가문의 사위가 된 심충언은 예상 대로 최고 10억 원의 보험금을 타낼 수 있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먼 친척 뻘 되는 신체 건강한 20대 청년을 죽이면 억대의 보험금을 탈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정씨 가족이 선택한 희생양 원광태(이범수)는 가족의 바람대로 쉽게 죽어주지 않는다.

이렇듯 어려운 보험 사기극의 음모를 실없는 유머로 포장한 <하면된다>는 엽기 코미디와 사회 풍자극 사이에서 위험한 줄다리기를 시도한다. 그러나 <하면된다>가 유발하는 웃음의 수위는 세련되지 못하다. 보험 사기극에 매진하는 정씨 가족의 행보는 날카로운 풍자가 아니라 무디고 익숙한 장르의 규칙 안에 함몰되어 있다. 또 보험 사기극에 동참한 배우들은 코미디언처럼 과장된 연기만 보여줄 뿐, 풍자 정신을 제대로 녹여내지 못했다.

과연 <하면된다>는 값 싼 풍자 코미디로 흥행에 성공을 거두기 어려웠던 한국 영화계에 '하면 된다'는 선례를 남길 수 있을까? <하면된다>를 한국의 70년대에 관한 풍자 영화로 보지 말고 킬링 타임용 만화로 본다면, 가능한 일이다.

황희연 <동아닷컴 기자> 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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