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쟁점토론]도서정가제 의무화

  • 입력 2000년 10월 20일 18시 36분


《온라인서점과 일반서점을 중심으로 도서정가제 논란이 일고 있다. 도서정가제에 찬성하는 측은 도서정가제가 폐지되면 책값을 지나치게 내리는 출혈경쟁이 일어나 출판시장이 붕괴될 것이고 잘 팔리는 책만 유통돼 학문서적 등 다양한 책을 펴내기가 어려워진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반대론자들은 도서정가제는 생산자가 일방적으로 가격을 결정함으로써 시장경쟁을 약화시켜 출판시장의 질적 발전을 막으므로 고객중심의 가격체계와 서비스를 위해서는 도서정가제가 폐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찬성/출혈경쟁 방지 출판시장 살려▼

도서정가제는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도서정가제 파괴는 출판의 다양성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정가제가 무너지면 서점의 진열대는 베스트셀러 등 잘 팔리는 책이 차지하게 될 것이고, 출판사들은 베스트셀러 위주의 도서만 출판하게 될 것이다. 결국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상업적인 책들이 범람해 양서는 설자리를 잃게 된다. 이것은 문화인프라의 토대가 무너지고 독자들의 도서 선택 폭이 좁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도서정가제의 파괴는 소비자에게 이익을 주지 못한다. 현재 도서가격은 기본 제작비에 도소매 마진과 출판사의 마진을 더하는 선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할인을 할 여력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할인 경쟁에 들어간다면 필연적으로 거품가격이 생겨나고 이를 다시 눈속임으로 할인해 줌으로써 도서의 명목가격이 현재보다 훨씬 올라갈 수밖에 없다. 결국 명목가격 인상폭이 할인폭을 넘어서 실제 도서가격이 현재보다 인상되는 꼴이 되고, 이러한 폐해는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가될 것이다.

셋째, 도서정가제 파괴는 출판산업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다. 할인경쟁은 필연적으로 출혈경쟁을 불러와 자금력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중소서점과 일부 대형서점은 시장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서점의 붕괴는 반품률의 급상승으로 이어질 것이고 이는 출판사 도산으로 이어져 출판산업 존립에 심각한 타격이 될 것이다. 또한 모두가 할인판매를 하게 된다면 할인을 주무기로 성장하고 있는 인터넷 할인서점의 장점도 사라지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해 인터넷 할인서점의 존립 자체가 불투명하게 될 것이다.

현재 인터넷서점의 성장은 기존 서점들이 도서정가제를 유지함에 따라 상대적으로 반사이익을 얻고 있는 것이다. 시장 자체가 가격 할인경쟁 국면에 돌입하면 온라인서점이든 오프라인서점이든 출혈경쟁으로 인해 살아 남는 서점이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도서정가제를 유지하면서도 서로 공생하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인 것이다.

먼저 온라인서점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이점과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젊은층의 도서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출판사와 독자를 직접 연결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맞춤 서비스가 가능하다. 이 경우 세부 계층별 독자들의 구매 욕구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출판사들의 기획출판이 다양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프라인 서점은 독자들이 다양한 책을 현장에서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이 중요시된다. 온라인에서 보여 줄 수 없는 공간적 이점을 찾아 좋은 책을 더욱 알릴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러한 상호 장점은 새로운 독서인구 창출에, 그리고 책이라는 문화적 매개체를 통해 상호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윤경하(교보문고 사장)

▼반대/시장논리 외면땐 고객도 외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종이책이 죽었느니 살았느니 하는, 이른바 e북 논란으로 출판계와 서점계가 들끓더니 이제는 도서정가제 문제로 관련업계가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다. 책의 미래를 걱정하던 고담준론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대신 이전투구의 밥그릇 챙기기가 연출되고 있다. 도서정가제 논란의 한쪽 당사자로서 여간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도서정가제 논란은 냉정하게 말해 밥그릇 싸움이 그 본질이다. ‘독자’를 핑계로 대고 ‘문화’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핑계이고 명분일 뿐이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르냐 하는 도덕적 가치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쪽이 시장에서 살아남느냐 하는 이해타산이 문제의 핵심이다. 도서정가제 고수를 주장하는 쪽은 그것이 이익을 보장하기 때문에 그렇고, 철폐를 주장하는 쪽 또한 그것이 생존을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의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도서정가제란 출판산업의 예외성을 인정한 일종의 보호장치로서, 생산자가 생산품의 가격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유일한 사례다. 그런만큼 경쟁이나 고객 지향의 서비스 정신과는 애초부터 거리가 멀다. 도서정가제 고수를 외치는 쪽의 입장을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문화상품에 시장논리를 들이대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책은 문화상품이기 때문에 무한경쟁의 시장에 내놓아서는 안되며, 정가제라는 치외법권지대에서 예외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1977년 이래 20년이 넘도록 정가제의 울타리 안에서 안주해온 출판―서점계의 상황을 보면 오히려 정가제가 우리 도서시장을 왜곡시킨 한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예나 지금이나 출판―서점계는 늘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었고, 체질개선도 요원하다. 1987년 대형서점의 지방점 개설 파동을 비롯해 출판시장 개방, 도서대여점 문제, 도매상 부도 파문 등을 겪으면서도 관련 업계는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기보다는 늘 그 타령으로 보호와 지원을 요청했다.

물론 도서정가제가 모든 문제의 원흉이라거나 할인만이 능사라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출판사 창고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철 지난 재고도서를 ‘기획상품’으로 포장해 폭탄세일하듯 하는 일부 인터넷서점의 무분별한 작태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다만 도서 최고할인율 제한을 준수하는 것 같은 페어플레이만 약속된다면, 할인이 도서시장의 여러 가능성들을 열어놓는 한 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도서정가제 논란은 정가제 자체에만 국한할 게 아니라 우리 도서시장 전반에 걸쳐 그 논쟁의 전선을 확대시킬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예컨대 반품이 보장되는 무기한 위탁판매, 결제관행, 재고도서의 개념 정립과 그에 따른 적정 할인율 적용 문제 등 도서시장 발전을 위한 다양한 논의들이 이번 기회에 공개적으로 교환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완영(인터넷서점 ‘북스포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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