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高유가'파고, 증시 덮치나

  • 입력 2000년 9월 13일 18시 27분


불안하게 움직이는 국제 유가가 가뜩이나 취약한 국내 증시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내 주식시장은 연초부터 줄곧 만성적인 수급불균형과 금융 및 기업구조조정의 부진으로 8일 현재 40% 가까이 폭락한 상태.

분석가들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이번 증산 결정에도 불구하고 95년 이후 최저 수준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원유재고량과 전 세계적인 수요 증가세를 감안할 경우 유가가 추가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결국 국내 증시는 수급불균형 구조조정미흡 유가불안이라는 ‘3중고(苦)’에 상당기간 시달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과거 석유파동이 증시에 미친 영향〓1, 2차 석유파동이 증시에 미친 영향은 당시의 경제 기초 여건의 안정 여부에 따라 충격의 강도가 달랐던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1차 석유파동(74년 3∼10월) 당시 국내 주가는 18% 가량 하락하는 데 그친 반면 미국의 S&P500지수는 39% 가량 폭락했다. 이는 ‘유신정부 초기의 강력한 안정화정책’으로 유가 인상에 따른 대외적인 충격을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었기 때문.

2차 석유파동(78년 8월∼80년 12월) 때는 국내 증시가 31% 가량 폭락한 반면 미국 증시는 29% 가량 상승하는 대조적인 결과를 낳았다.

동양증권 이동수 애널리스트는 “선진국들이 1차 석유파동 이후 고유가에 대한 대응노력을 꾸준히 해온 데 비해 우리나라는 무리한 중화학공업 투자계획 등 확장 일변도의 재정 금융정책을 구사, 2차 석유파동의 충격이 훨씬 컸다”고 분석했다.

▽구조조정 가속화 여부에 달려 있다〓이번 국제 유가의 불안한 움직임이 전 세계 주요국 증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국내 증시의 경우 금융불안의 장기화와 유가급등 추세가 맞물린다면 추가적인 하락을 각오해야 할 상황.

고유가로 인한 증시 충격의 강도는 구조조정의 진척 여부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다.

우선 유가가 30∼35달러인 상황에서 구조조정이 가속화된다면 주가는 상승 추세로 반전, 800선을 회복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구조조정이 지연될 경우 600선 붕괴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

또 구조조정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국제 유가가 배럴당 40달러까지 치솟을 경우 그나마 700선을 지킬 수 있겠지만 구조조정마저 지연된다면 ‘바닥 설정’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이동수 애널리스트는 “현 경제 여건은 원활한 구조조정을 위해 저금리기조와 통화확대가 지속되는 상황”이라며 “유가가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구조조정의 성공 여부를 동시에 고려하는 게 현 시점에서 타당한 접근방식”이라고 말했다.

<이강운기자>kwoon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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