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시월애>이현승 감독 "이미지에 초점 맞췄다"

  • 입력 2000년 9월 7일 13시 44분


이현승(39) 감독은 거구의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섬세하다. 홍익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미술학도 출신이기 때문일까. 그가 만들어낸 영상은 언제나 예사롭지 않은 색과 이미지의 절묘한 배합이었다.

그러나 9년여 동안 '감독'이란 칭호를 달고 살았던 그는 작품의 편수를 늘리는 데 게을렀다. <그대 안의 블루>(92)<네온 속으로 노을지다>(95) 이후 5년만에 신작 <시월애>를 완성한 이현승 감독. 그와 시사회 직후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시월애>는 시간을 초월한 사랑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동감>과 비슷하다. <동감>이 먼저 개봉됐기 때문에 부담스럽진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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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부담이 많이 됐다. 하지만 <동감>과 <시월애>는 소재만 비슷할 뿐 구조는 많이 다르다. <동감>이 두 주인공에게 현실의 연인을 붙여줌으로써 4각 관계의 미묘한 심리 드라마를 강조했다면, <시월애>는 전체적인 이미지에 초점을 맞춘 영화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살아가는 두 주인공의 사랑을 표현하는 게 쉽진 않았을 것 같다.

원래 멜로 영화라는 게 주연배우들의 시선 교환을 가장 중요한 시추에이션으로 활용하는 장르인데, 그걸 배제해야 하니까 어려운 점이 많았다. 그래서 난 장갑, 물고기 등의 소품을 이용해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C.G.를 사용한 장면도 많았던 것 같다. 어떤 장면이 C.G로 촬영된 것인가?

우리 영화는 SF가 아니라 멜로 영화기 때문에 되도록 C.G가 눈에 띄지 않도록 노력했다. 영화의 약 5~10% 정도를 C.G로 처리했는데, 어떤 장면이 C.G인지 알려주면 재미없을 것 같아 퀴즈로 남겨두겠다.

▶<시월애>처럼 다른 시간대의 사람이 소통하는 게 가능하다고 보나? 과학적인 고증은 얼마나 이루어진 것인지 궁금하다.

학계에서도 시간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기 때문에 고증을 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을 말한다면, 난 각각의 시간대에 서로 다른 내가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죽은 성현(이정재)이 있고, 강아지와 놀고 있는 또 다른 성현이 있고. 다양한 '나'의 가능성을 믿기 때문에 일반적인 시간 개념을 뒤틀어버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 속에서 성현이 인터넷을 통해 시간 구조에 관한 사이트를 뒤져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성현이 본 사이트는 정확히 무엇인가?

M.C. 에셔라는 화가의 홈페이지다. 에셔는 시공을 초월한 이미지에 집착했던 화가기 때문에, 시간을 초월한 사랑을 다루는 이 영화에 잘 어울릴 것 같아 삽입했다.

▶성현의 집에 '일 마레(Il Mare)'라는 이름을 달아준 이유는?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이 집의 이름은 '포엠(Poem)'이었다. 근데 내가 연출을 맡게 되면서 이름을 바꿔버렸다. 너무 상투적인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 마레'라는 이름을 붙여준 이유는 특별히 없고, 그냥 바닷가에 서 있는 집이니까 '바다'라는 뜻의 '일 마레'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영화 속에서 성현이 선물한 벙어리 장갑을 은주(전지현)가 바다에 떠내려보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건 어떤 의도인가?

영화 속에 나오는 벙어리 장갑은 손과 손이 가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건 두 사람이 시간을 뛰어넘어 가늘게나마 연결되어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것이고, 그 장갑을 바다에 떠내려보낸 건 두 사람의 헤어짐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 장갑은 영어로 글로브(Globe)인데, 이건 'give'와 'love'의 합성어라고 들었다. 벙어리 장갑은 이 영화에서 다양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중요한 소품이다.

▶감독으로서 두 배우의 연기를 평가한다면?

정재는 연기를 아주 잘했다. 이완과 긴장의 묘미를 잘 살렸고, 한 마디로 물이 오른 것 같다. 지현이는 연기 폭이 아직 좁지만 처음 생각했던 것보단 훨씬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처음 지현이를 캐스팅했을 땐 이것보다 훨씬 연기를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

▶전지현의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서 영화 속 그녀의 직업이 성우라는 게 아이러니컬하다.

나도 처음엔 그것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직업 설정을 바꾸자니 여러 가지 걸리는 게 너무 많았다. 그래서 더빙하는 신을 줄였고, 더빙 신을 찍더라도 '악' 소리만 내는 수준으로 그쳤다.

▶항상 비슷한 스타일의 영화만 고집하는 것 같다. 좀 다른 색깔의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진 않나?

이젠 그렇게 할거다. 지금처럼 4,5년에 한번 씩 영화를 만들진 않겠다. 다양한 장르에도 도전해볼 생각이다.

황희연 <동아닷컴 기자> 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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