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보의 옛날 신문 읽기]'김일성의 침실'

  • 입력 2000년 9월 2일 11시 37분


오늘은 먼저 퀴즈문제를 하나 풀어봅시다. 문제는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입니다.

그는 뜻밖에 유머감각이 대단하더군요. 성격도 호탕하고 호방하다고 합니다. 그와 대화를 해본 사람은 대단히 합리적이라는 평가도 내리더군요. 게다가 예술에 대한 식견과 안목도 상당해요. 특히 영화에 관한 한 광(狂) 수준이랍니다. 술도 잘 마신대요. 원샷도 즐긴대지요. 제가 보기에 마초(macho)의 매력도 철철 넘쳐흐릅니다. 아, 사내다워라!

급기야는 이 사람의 인기가 급상승하더니 신드롬까지 생겨났습니다. 이 사람의 패션 스타일을 흉내내 기성복을 만들어낸 옷회사도 등장했더군요.

자,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딩동댕~, 네 맞았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입니다.

이제 이 사람에 관한 기사 한편을 읽어보기로 합시다. 86년 11월 12일자 기사로군요. 제목은 `재일 언론인「북한의 비극」서 김정일 사생활 폭로'입니다.

◇임신교사 자살하다

<<북한을 사실상 통치하고 있는 김정일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 주로 스위스 일본 서독 등 서구제국에 7t의 금괴와 거액의 달러 엔 마르크 프랑 파운드화를 예금해놓고 있다고 북한문제전문가 기야 다카야스씨가 폭로했다.

일본의 지지(시사)통신 홍콩특파원 사회부장을 거쳐 현재 내외뉴스 주필로 재직하고 있는 칼럼니스트 기야씨는 최근 발간된 자신의 저서「북한의 비극」에서 김정일의 사생활등을 폭로했다. (중략)

기야씨는 김은 색마이며 측근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정사등 비밀을 누설하면 제손으로 쏴죽이는 살인마라고 말했다.

다음은 「북한의 비극」중 김정일에 관한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김정일은 소년시절 생모의 사망(7살)과 김일성의 재혼(11살)을 계기로 성격이 비뚤어지고 난폭해졌다.

어릴때부터 일찍 섹스에 눈을 떠 중-고등학교 시절 김정일에게 당해 임신한 교사가 자살하는 소동도 벌어졌다.

손을 댄 여학생도 많은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비공식 숫자이나 김정일이 18살 될 때까지 손을 댄 여성은 1백8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략)

김정일은 자신의 비밀 특히 정사에 관한 일을 조금이라도 외부에 누설하거나 자신의 방탕한 생활에 충고를 하는 자가 있으면 총살.... (중략)

77년 여름 김의 무절제한 여자관계에 대해 관사관리책임자 이수한(당시 39)이 「정도껏 하는 것이 몸을 위해 좋은데...」라고 한 말이 김에게 보고돼 이는 김의 사무실로 불려들어가 권총으로 사살됐다.

이때 김정일이 쏜 탄알은 12발이었다.

77년 가을 김정일의 여성관계등 사생활을 북괴군 수뇌부에 흘린 연락장교 추소택 대좌(52)도 권총으로 사살됐다.

80년 김일성 앞으로 익명의 투서가 날아들어 갔다.

`아드님의 사생활은 너무 지나치게 난잡합니다.

이대로 방치하면 북한의 전 여성은 멀지않아 아드님의 적이 될것 입니다'라고 씌어있었다. (중략)

북한의 영화 여배우중 「당의 진정한 딸」이라는 영화의 주연을 한 유명희, 「꽃파는 소녀」의 주연 홍용희도 김정일의 여자이며 이밖에도 그가 손을 댄 여배우는 채금수 이정순등 10명에 달하고 있다.

소위 「만수대 예술단」중에도 10여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략)>>

◇한국언론은 유리 겔라

색광이며 살인마인 한 사람이 세월이 흘러 오늘날 서태지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며 성공적인 이미지 변신을 했군요. 참으로 놀랍습니다. 유리 겔라의 초능력을 보는 것보다도 더 신기하지요?.

이 대목에서 퀴즈 하나 더.

기야 다카야스씨와 기자와 데스크와 신문사와, 그리고 일부 독자 (저는 분명 `일부'라고 했습니다) 가운데 누구의 수준이 가장 높을까요?

딩동댕~, 네 맞았습니다. 정답은 `오십보백보다'입니다.

◇포르노와 이승복

제가 중2 시절, 그러니까 74년, 친구 양만석의 집에서 읽었던 만화가 생각납니다(양만석은 오늘날 제 낚시 친구입니다). 그 시절 양만석과 저는 성인만화를 즐겨 읽었는데, 놈과 제가 읽었던 만화중에는 `김일성의 침실'이란 것도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꽤 이름이 알려진 만화가의 작품이었지요.

아, 섹스와 악의 화신 김일성! 아, 그 야수적 욕정이 더운 땀으로 넘쳐 흐르던 김일성의 새빨간 침실! 아, 그 가슴 두근거리게 하던 새빨간 표지의 포르노!

그리고 말입니다. 저는 김일성의 침실을 엿본 뒤로 더욱 철저한 이승복 소년이 되었던 것입니다(나는 콩사탕이 싫어요! 새빨간 것은 몽땅 싫어요!). 그 예술적인 반공주의와 포르노의 환상적 결합.

따지고 보면 `김일성의 침실'과 `재일 언론인「북한의 비극」서 김정일 사생활 폭로'같은 작품이 어디 한두 편입니까. 바로 엊그제까지만 해도, 아니 오늘도 그 외양을 달리해서 여전히 생산되고 있지는 않는지요.

이제 마지막 퀴즈가 나갑니다. `김일성의 침실'과 `재일 언론인「북한의 비극」서 김정일 사생활 폭로' 제하의 기사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포르노적일까요?

딩동댕~, 네 맞았습니다. 틀리신 분은 제게 메일 보내주십시오. 정답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추신. 저에게 포르노적 상상력을 일깨워준 `김일성의 침실'의 만화가 이름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김정일 사생활'을 폭로한 신문의 이름도 밝히지 않겠습니다. 옛날 얘기 시시콜콜 하면 피차 창피해지는 법입니다.

늘보<문화평론가>letitb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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