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식의 과학생각]둔황 석굴 지켜낸 과학의 힘

  • 입력 2000년 8월 30일 18시 35분


9월초 우리나라 기업인들이 실크로드 탐사에 나선다. 중국 정부가 서부 재개발 사업에 한국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를 권유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서부지역에 철도 도로 공단 등을 건설하기 위해 해외자본의 유치를 서두르고 있다. 중국의 과학자 고고학자 지질학자들이 다수 동행하는 이번 탐사는 베이징을 출발해 시안 란저우 우루무치 민씽을 거쳐 둔황(敦煌)에 이르는 1만6000㎞를 답사하는 강행군이다.

실크로드는 한무제 때의 수도인 장안(현 시안)과 로마의 콘스탄티노플을 이어주었던 모든 교역로를 뜻한다. 4∼14세기에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의 비단 종이 도자기, 서양의 면화 향료 유리가 오고 갔다. 이러한 물건을 따라 문화와 예술이 교환되었음은 물론이다. 말하자면 실크로드는 인류 최초의 정보 고속도로인 셈이다.

인도의 불교 역시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으로 전파되었다. 그 증거는 둔황의 천불동(千佛洞)이다. 둔황은 장안을 출발한 중국 상인들이 고비사막 안에서 마지막으로 지나가던 오아시스 도시이다. 둔황에서 남동쪽으로 20㎞ 떨어진 곳에 위치한 천불동은 길이가 1600m에 달하는 벼랑안에 수많은 사원이 벌집처럼 들어서 있는 동굴 단지이다. 한때 1000개 이상의 석굴사원이 있었으나 490여 개가 남아 있다.

수세기에 걸쳐 불교 승려와 순례자들이 바위를 뚫고 만들어놓은 석굴 안에는 불상 벽화 고문서 등 중국 불교예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그득했다. 천불동은 고립된 지형 덕분에 중국에서 불교가 박해받을 때에도 피해를 보지 않았다.

그러나 20세기 초부터 중국인들이 ‘외국 악마들’이라고 지칭한 서양 사람들, 예컨대 스벤 헤딘(스웨덴) 오렐 스타인(영국) 랭던 워너(미국) 폴 펠리오(프랑스)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실크로드의 문화유산 발굴과 수집에 나섬에 따라 천불동에 손이 미치게 된다.

스타인이 둔황에서 가져간 고문서는 런던의 대영박물관을 가득 채웠으며, 워너는 벽화까지 떼어내 하버드대 미술관으로 옮겼다. 펠리오가 둔황 17호 석굴에서 실어간 자료에는 신라 고승 혜초의 순례기인 ‘왕오천축국전’이 들어 있다.

1920년대 중반에 중국 정부는 외국 고고학자들의 둔황 탐사를 전면 금지했다. 그러나 천불동 석굴은 외국악마들 못지 않게 위협적인 요인에 의해 훼손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자연환경과 관광객들로 인해 석굴의 보전이 위험수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먼저 기후조건이 석굴을 괴롭혔다. 바람이 끊임없이 벼랑을 침식했으며 모래가 석굴 안에 쌓일 뿐만 아니라 먼지로 조각과 벽화를 뒤덮었다. 눈과 비의 습기는 벽화의 도료로 파고들어 그림이 바위에서 떨어지게 했다. 게다가 1980년 일반인에게 공개된 뒤부터는 관광객이 몰려들어 그들이 동굴 안에서 뿜어내는 습기가 벽화의 그림물감을 손상하고 바닥의 타일을 부식시켰다. 타일의 일부는 1000년 된 것들이다.

1987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 440개를 지정하면서 둔황 석굴을 포함시킨 것을 계기로 중국 정부는 본격적인 보전에 나섰다.

특히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미국의 게티보존연구소와 손잡고 과학적인 대책을 마련했다. 가령 길이 5㎞의 바람막이 울타리를 만들어 석굴 앞에 세웠다. 목적은 절벽으로 불어오는 모래의 양을 감소시키는 데 있다. 해마다 동굴 밖으로 쓸어내야 했던 모래의 양을 60%까지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조건이 석굴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하기 위해 태양열로 움직이는 기상장치를 설치했다. 이 장치는 바람의 속도와 방향 습도 온도 이산화탄소 따위에 관한 자료를 기록한다. 이러한 정보들은 관광 전략 수립에 활용된다. 관광객에 의한 폐해를 줄이는 방안도 강구됐다. 근처에 박물관을 짓고 그 안에 인기가 높은 석굴 10여개를 그대로 재현해놓은 것이다.

둔황 석굴은 고고학이 과학과 손잡고 문화유산 보전에 성과를 거둔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자들도 둔황 석굴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옛 조상의 흔적을 간직하는 일에 배전의 관심을 기울여야 될 것 같다.

(과학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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