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李총재 '訪北유보'판단 옳다

  • 입력 2000년 8월 20일 19시 19분


한나라당의 이회창(李會昌)총재가 북한 방문을 '유보'하기로 한 것은 적절한 판단이라고 본다. 남북관계가 새롭게 전개되는 마당에 이총재가 제1야당 총재로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을 만나는 것은 당연하면서도 필요한 일이지만 지금 당장 그렇게 해야 할 시기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이총재는 지난주 특별담화를 통해 이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김위원장의 초청으로 평양을 다녀왔고 언론사 사장단도 평양을 방문했던 만큼 이제는 김위원장과 북한언론인들이 서울에 와 남한의 실상을 보고 북한주민들에게 알려야 할 차례라며 "남북대화와 교류는 균형잡힌 모습과 예양을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야당총재까지 만사를 제쳐두고 북으로 쫓아간다는 것은 균형잡힌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우리는 이같은 이총재의 상황판단에 동의한다.

이총재의 이런 태도에 대해 "꼭 그렇게 따져야 하느냐"며 이견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의 사정을 보면 우선 김위원장이 이총재 초청의사를 밝혔다고는 하나 그 과정이 석연치 않고 적절한 격식을 갖춘 것으로도 보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제1야당총재가 "오라"고 한다는 말 한마디만 듣고 방북대열에 참여하는 것은 좋은 모습이라고 할 수 없다.

또 우리사회 일각에는 현재의 남북관계가 지나치게 가속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없지 않다. 남북한 관계의 발전은 서로 수용, 소화할 수 있는 속도로 진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같은 이유로도 이총재의 방북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를 선택해 이뤄지는 것이 옳다.

더구나 정치권에서는 이총재의 방북문제를 두고 한나라당측이 정부 쪽에 주선을 요청했느니,안했느니 하면서 치졸한 비방전까지 벌어졌다. 그런 요청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공식입장이다. 그렇다면 이총재가 지금 시점에서 북한을 방문하는 것은 마치 정부측에 등을 떠밀려 마지못해 가는 모양새로 비춰질 수도 있다.

이총재의 방북 문제는 설사 야당의 주선 요청이 있었다 해도 일이 확정될 때까지는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할 사안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 문제를 앞질러 발설했다. 그 의도가 궁금하다. 본란이 줄곧 강조해 왔듯이 정치권 특히 여권은 어떤 경우든 남북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해서는 안된다. 여기에는 야당도 예외일 수 없다. 차제에 한나라당도 남북관계에 대한 확고한 비전과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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