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미 선거의 '페어플레이'

  • 입력 2000년 8월 17일 18시 50분


“공화당은 2주전 필라델피아 전당대회에서 민주당의 흉내를 내려고 애를 썼다. 차제에 공화당이 정책도 바꾸기를 기대한다.”

민주당의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조지프 리버맨 상원의원은 16일 후보수락 연설을 하면서 공화당을 ‘비판’했다. 공화당이 지난 8년간의 민주당 업적을 인정하지 않은 채 여러 공약을 내세우고 있으나 공화당의 근본적인 정책엔 변화가 없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선 전통적으로 각 당의 부통령 후보가 상대당에 대한 공격수 역할을하고 있다. 리버맨 의원도 ‘총대’를 메고 나선 것이지만 공격의 톤은 비교적 낮고 점잖았다.

이에 앞서 공화당은 전당대회에 앞서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공격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실제로 대회 기간 중 연사로 나선 사람들은 민주당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도 약속을 지켰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와 부통령 후보인 딕 체니 전국방부장관이 민주당을 공격할 때도 ‘비난을 위한 비난’의 느낌이 드는 억지 주장이나 악의적인 표현은 찾기 어렵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14일 개막 연설에서 클린턴 대통령은 “공화당은 우리가 8년 동안 좋은 기회를 허비했다고 주장하지만 그 기간 중 미국은 경제 사회 등 모든 면에서 훨씬 나아졌다”고 반박하며 자신의 치적을 옹호했을 뿐 감정적인 대응은 삼갔다.

21세기의 첫 대선 승리를 위해 공화 민주 양당이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치열한 선거전을 벌이고 있지만 이들의 ‘교전규칙’은 철저하게 ‘페어플레이’ 정신에 입각해 있다. 상대방 정당을 무차별 공격하는 게 아니라 유권자들을 상대로 정책대결을 벌이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20여명의 한국 정치인들이 양당 전당대회를 참관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하고 있다. 정책을 외면한 채 당리당략에 따라 극한대립과 이전투구로 날을 지새기 일쑤인 이들이 정권을 놓고 경쟁을 벌이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선진정치를 보며 과연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궁금하다.

<로스앤젤레스〓한기흥특파원기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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