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안병준/민족화해주간을 맞이하며

  • 입력 2000년 8월 13일 14시 53분


오늘부터 시작되는 민족화해주간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앞으로 지속될 수 있는 남북관계 정상화를 갈망한다. 실로 역사적인 6·15 남북 공동선언 이 출범시킨 화해 분위기가 이번 8·15 민족화해주간을 넘어서 평화통일 과정으로 정착돼야 할 것이다. 이 원대한 목적을 지향해서 우리는 투철한 역사적 인식을 갖고 당면한 현실을 극복하는데 국민적 합의를 결집해야 할 것이다.

이번 민족화해주간 행사는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는 것으로 큰 의의를 갖는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서 남북에서 각각 100명의 이산가족들이 남북을 상호 방문하게 된 것은 온 겨레가 마음 속으로 경축할 일이다. 이미 남북은 비방을 중단하기로 다짐했고, 서울에서 개최된 제1차 장관급회담에서는 끊어진 경의선을 복구하기로 하는데도 합의했다. 이와 동시에 시민단체들이 거행하는 각종 행사도 실질적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하는데 기여하게 되길 바란다.

우리는 차제에 6·15 공동선언과 그 후속 조치들은 하나의 과정으로서 평화통일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렇게 긴 안목에서의 평화통일 과정은 지금 겨우 시작하고 있을 뿐이다. 이 과정의 최종 결과로서 올 수 있는 통일은 그에 필요한 남북합의와 주변정세가 완비되어야 마침내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정상회담이 촉발한 화해노력은 군사적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실천하는데 필수적인 기초적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경제협력도 일종의 신뢰구축 조치로 볼 수 있다. 예컨대 경의선 연결을 실현하려면 휴전선에 배치한 지뢰를 제거해야만 하고 이를 위해서는 남북한 군사당국이 직접 협력해야 한다.

이와 같이 남북한이 참된 평화를 실천하기에 앞서 공동으로 이룩할 수 있는 것 중에서 쉬운 것부터 먼저 착수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마치 통일이 온 것처럼 들 떠 있을 것이 아니라 화해협력 과정을 착실히 가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한편 우리는 8·15 광복의 역사적 함의를 재음미해야 한다. 서양 명언이 말해 주는 바와 같이 역사를 망각하는 자는 그것을 되풀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볼 때 우리 민족이 자력으로 주권을 지키지 못했기에 우리는 일본에 의해 국토를 찬탈당했고 8·15 광복도 사실상 연합군의 승리로 인해 초래됐던 것이다. 그 뒤 미국과 소련간의 냉전 결과 한반도는 양분되었다.

이제 남북은 다시 스스로의 노력으로 분단의 벽을 허물기 시작했지만 중국 일본 러시아 및 미국 등 강대국들은 미사일방어와 한반도를 둘러싸고 세력다툼을 재연하고 있다. 이 와중에서 대한민국은 우리와 안보이익과 민주주의를 공유하고 있는 미국 일본과 제휴하면서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의 건설적 역할을 얻어내는 외교를 슬기롭게 전개해야 한다.

이렇게 닥쳐오는 외적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먼저 국내에서 이 국가이익에 모두 결속하고 국력을 배양하는데 합심해야 하겠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의료대란을 겪고 있다. 이는 현재 매우 어려운 여건하에서 다원화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갈등과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만약 이 사태가 장기화한다면 그것은 사회안정은 물론이고 국민의 생존과 건강을 크게 훼손할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더불어 살아야 할 민족공동체로서의 일체감을 되살리기 위해서도 이 위기를 하루 속히 타개하고 흔들리고 있는 경제를 재건하는데 각자 응분의 소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모처럼 일고 있는 민족화해정신을 평화통일 과정에 효과적으로 반영하기 위해서 우리는 국내에서 화해협력의 구심점을 찾아야 한다. 정부와 의료계, 기업과 시장, 정계와 시민사회간에 불신을 해소하고, 타협을 통해 합의 및 동의를 이뤄야 한다. 지금은 현란한 수사(修辭)보다 작은 실천이 요망되는 때다. 이 한주간 우리는 보다 겸허한 자세로 공공선을 위해서 자제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안병준(연세대 사회과학대학장·학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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