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송상근/의료대란 사후약방문

  • 입력 2000년 8월 10일 18시 55분


의약분업 관계 장관 회의가 열린 9일 오후 보건복지부와 국무총리실 출입기자들은 정부가 내놓을 대책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대한의사협회가 11일 전면 재폐업을 선언하고 서울대 연세대 등 주요 대학 의대교수들이 외래 진료를 중단키로 결정해 ‘제2의 의료대란’이 우려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기자는 국무총리가 국민에게 사과하면서 의료계에 전향적인 대책을 내놓고 진료 복귀를 호소하는 모습, 그래도 안되면 대통령 또는 여야 영수가 나서는 수순을 생각해 봤다.

그러나 2시간 가량의 회의 뒤에 나온 ‘최종 카드’는 의료보험 수가를 2년 내에 현실화하고 전공의 처우는 적정 수준으로 인상하며 현 사태는 기본적으로 의료 인력 과잉 때문이므로 의대 입학 정원을 동결한다는 3개 항목뿐이었다.

의료계 폐업으로 환자와 가족이 겪는 고통과 어려움에 대해 죄송하다, 열악한 의료 환경 속에서 폐업할 수밖에 없는 의사 심정을 이해하지만 진료에 복귀해 달라, 의약분업은 안정된 의료 서비스와 후손의 건강을 위해 불가피한 개혁이라는 등의 말은 어디에도 없었다.

정부가 A4용지 1장 분량도 안되는 발표문만 내놓자 언론사와 정부 부처의 전화 및 인터넷 사이트에는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시민들은 결국 돈 때문에 이 고생을 시키느냐고 지적했고 의사들은 의사들대로 돈 몇 푼 올려주면 된다는 인식이 문제라고 항의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복지부 간부들은 “최선정(崔善政)장관이 9일 밤 의료계와 막후 대화를 시작, 그 결과를 10일 기자회견에서 발표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가 2∼3시간만에 “의료계 대표를 만나지 못했다”며 꼬리를 내렸다.

최장관은 10일 오전에야 “국민에게 불안과 심려를 끼쳐 참으로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이번 사태는 의약분업뿐만 아니라 보건의료제도 전반에 걸쳐 누적돼 온 문제점에서 기인한다”고 밝혔다. 이런 게 사후 약방문 아닐까.

송상근<이슈부>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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