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교수의 법과 영화사이]케인호의 반란

  • 입력 2000년 8월 3일 19시 16분


▼<케인호의 반란> (The Caine Mutiny, 1954)▼

감독: Edward Dmytrik

출연: Humphrey Bogart / Jose Ferrer/

원작: Herman Wouk

평상시에도 군인은 상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하물며 나라의 운명과 많은 생명이 걸린 전쟁 중에야. 그러나 상관의 명령이 명백히 불법이거나 상식에 어긋난 경우에도 무조건 따라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 《케인호의 반란》은「항명(抗命)작품」의 고전에 속한다. 허만 워크( Herman Wouk)의 동명 소설(1951)을 영상으로 재구성한 이 영화는 50년대의 은막(銀幕)의 영웅, 험프리 보가트의 예기(藝技)에 편승하여 법정드라마의 명예의 전당에 자리 잡고 있다. 덧붙여서 직업군인과 단기 복무자 사이의 갈등이라는 군대 배부의 은밀한 치부를 파고든 수작이기도 하다. 명문 대학 출신 애송이 장교의 눈에 비친 전쟁과 군율, 인간의 용기와 비열함이 교차된다.

영화의 첫 장면은 2차대전이 한참 진행되고 있을 때 프린스턴 대학 우등졸업생 키스가 해군 장교에 임관하는 의식을 비친다. 키스는 겉으로는 나라의 부름에 기꺼이 응한 용맹스런 청년이지만 속으로는 아직도 부모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한 '마마보이'다. 아들을 전쟁에 보내는 어머니는 아들이 자신의 허락도 없이 애인을 사귄 것이 불만이다. 밤업소의 가수인 애인은 언제까지 엄마 치마폭에 매달릴 것이냐고 핀잔을 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태평양을 향해 출항하는 배를 타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전쟁은 바로 지옥이니 절대로 위험한 일에 먼저 나서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용돈을 건네준다.

키스는 열렬히 갈망한 전함 대신 구축함의 소해정 케인호에 배속된다. 낡아빠진 이 배는 아직도 실제로 어뢰를 제거한 실적이 전혀 없고 치욕스런 사고를 당한 전력이 있어 이름까지 개명한, 낙인찍힌 삼류함정이다. 군기도 느슨하기 짝이 없다. 여가에 소설을 쓰고 있는 통신장교 키퍼는 노골적으로 케인호는 해군의 쓰레기 집합소라고 자조한다.

새 함장 퀴크가 부임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진다. 직업군인인 그는 수병의 하나하나 헤어스타일과 복장에 대해서까지 챙기고 과도하게 간섭한다. 한 번은 목표물을 예인하는 훈련 과정에서 바지 위에 너덜대는 수병의 셔츠를 문제삼기에 급급한 나머지, 배가 항로에 이상을 일으키는 것도 모른 채 넘긴다.

퀴크는 극도로 긴장하면 호주머니에서 조그만 쇠 구슬 두 개를 꺼내어 손안에서 호두처럼 굴리는 버릇이 있다. 찰각찰각, 철령(鐵玲)의 불길한 소리가 그의 정신적 강박의 증상으로 전해진다. 행정장교 스티브는 함장에게 충직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키퍼는 기회가 닿는 대로 퀴크가 정신적 '강박증상'(paranoid)을 보인다면서 이를 입증하기 위해 증상일지를 만들기도 한다.

지휘관의 여러 가지 '이상 징후'가 일어난다. 전 대원이 영화를 관람하는 오락시간을 뒤늦게 안 퀴크는 사전에 영화상영에 대한 보고가 없었다는 이유로 상영을 취소할 뿐만 아니라, 군기가 빠졌다는 이유로 일체의 영화의 상영을 중지한다. 또 훈련 중에 일부 수병이 헬멧과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함대원 전원에게 기합을 주고 외출도 전면 금지시킨다.

과도한 규율을 반발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이다. 케인호는 상륙작전을 조력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작전에 의하면 해안 1500야드까지 접근하면서 상륙하는 해병을 엄호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막상 이러한 작전을 무시하고 훨씬 이전에 뱃머리를 돌렸던 것이다. 그리고는 황색 부표를 바다에 떨어뜨림으로써 "늙은 겁쟁이"(Old Yellowstain)이라는 오명을 얻게 되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함장실에서 장교회의가 열리고 결정적인 해프닝이 벌어진다. 더없이 심각하고 진지해야 할 순간에 퀴크는 자신의 가족과 개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기막힌 소리를 한다. 장교들은 아연실색이다. 사기는 바닥에 떨어지고 모두가 가능하면 어떤 사건에도 휘말리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할 뿐이다. 이어서 장교식당에서 먹다 남은 딸기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직 장교는 식당 담당 수병이 먹는 것을 목격했다고 보고했으나 퀴크는 사건의 의미를 확대한다. 즉 과거에도 치즈가 도난 당한 사고가 발생한 것을 보면 누군가가 복제열쇠를 사용하여 장교식당을 수시로 드나든 게 분명하니 이 기회에 전원이 소지하고 있는 열쇠를 점검하여 범인을 색출하라고 명령했다. 법석 소동이 벌어졌지만 복제열쇠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퀴크는 자초지종을 상세히 알고 있으면서도 의도적으로 일을 크게 벌인 것이다.

세 사람의 장교는 해군항해복부규정 184조에 의해 지휘권을 인수하고 이 사실을 제독에게 통보할 것을 모의를 한다. 키퍼의 부추김에 의해 행정장교 마리크가 모의를 주도한다. 이 규정은 전쟁 중 지휘관이 정상적인 지휘능력을 상실한 경우, 전체의 안전을 위해 하급자가 임시로 지휘권을 인수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군의 엄격한 상명하복의 질서를 고려하여 이러한 예외적인 상황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책임은 항명한 반란자에게 부담시킨다. 이 조항은 현재에도 해군복무규정 속에 담겨 있다.

"이러한 행동을 취한 장교는 정당한 책임을 져야 하며, 이를 입증할 책임을 부담한다."(must bear the legitimate responsibility for, and must be prepared to justify, such action." ( Navy Regulations 1088조)

그러나 최종 실행에 옮기기 직전에 키퍼가 발뺌을 했고 나머지 둘도 물러난다. 실제의 반란은 절박한 위기의 상황에서 일어난다. 작전 중에 심한 폭풍우가 불어닥쳐 배가 좌초의 위기를 맞는다. 조타수의 간곡한 건의에도 불구하고 퀴크는 항로변경을 허용하지 않자 마리크는 함장을 감금하고 배의 지휘권을 인수하여 위기를 넘긴다. 마리크와 키스가 군사법정에 기소되고 소송전문가 그린월트가 배후에 키퍼가 관여된 것을 알고 사건의 변론을 자원한다. 그린월트는 차라리 자신이 검사였으면 한다는 말로 의뢰인의 기선을 제압한다. 마리크에 대한 변론은 지지부진이다. 의학적 정신장애에 대해 무지함을 인정한 그는 함장의 기이한 행동도 엄한 군기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고도 적절한 조치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퀴크가 정신장애가 아닌 것이 판명되면 마라크는 자동적으로 항명죄의 책임을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키퍼의 증언은 피고인들에게 치명적으로 불리하여 그린월트는 반대심문조차 포기한다. 키퍼의 주장인즉 자신의 생각으로는 지휘권을 인수한 것은 명백한 불법이자 오류였으며 시종일관 자신은 항명행위에 반대했다는 것이다. 비겁한 지식인의 전형적인 예이다. 해군 정신과 의사는 퀴크가 정상이라는 의학적 소견을 표명했다.

그린월트의 반대심문은 퀴크가 보여준 일련의 비상식적인 행동을 종합하면 의학적으로 '강박증상"에 해당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 맞춘다. 검사와 재판부는 시종일관 함장을 감싼다. 변호인에게 퀴크의 평판을 보호할 것, 특히 퀴크가 겁쟁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하라는 경고성 주의를 준다. 마침내 그린월트는 비상수단을 동원하여 증언대에 선 퀴크의 직업군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심하게 자극한다. 직업군인의 명예와 자부심을 건드리는 집요한 질문을 견디지 못하고 퀴크는 이성을 잃는다. '딸기도난사건'을 상기시키면서 당시에 문제의 딸기를 사병이 먹는 장면을 목격하고 이를 퀴크에게 정식으로 보고한 장교 하딩을 소환하여 대질 심문을 시키겠다는 말에 갑자기 광기가 발동한다. 주머니에서 예의 쇠구슬 한 쌍을 꺼내어 찰각찰각 소리를 내면서 케인호의 모든 사람들을 강하게 비난한다. 이것으로 상황은 끝이다. 긴장된 위기에서 자제력을 잃는 퀴크의 강박증이 입증되었고 두 장교는 무죄 방면된다.

승리를 자축하는 자리에 그린월트가 들어선다. 이미 상당히 취한 그는 좌중에 대해 엄중하게 설교한다. 뜨내기 군인에 불과한 자신들이 평화롭게 인생을 즐길 때 퀴크는 나라를 지키는 직업군인으로 온갖 궂은 일 치다꺼리를 했음을 상기시킨다. 만약 장교들이 퀴크를 조롱하는 대신 합심하여 조력했더라면 이와 같은 불행한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키퍼야말로 이 사건의 진짜 주범이며 무고한 군인의 생명을 죽인 장본인이라면서 그의 얼굴에 술잔을 끼얹는다. 비로소 진상을 알게된 장교들은 키퍼를 혼자 남겨두고 자리를 떠난다.

이 영화는 전쟁 중 군법회의 재판에서도 진실이 밝혀지고 정의가 담보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베트남 전쟁에서 양민을 학살한 한국군이 군법회의와 대법원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는 기록이 밝혀졌다. 인권유린을 막아주기는 커녕 오히려 이를 묵과했다는 비판의 대상이 되다시피 한 우리의 군법회의와 법원으로서는 더없이 자랑스런 역사의 한 장이다.

또한 이 영화는 직업군인을 대하는 지식인의 알량한 우월 의식의 허구를 밝히는 수준 높은 작품이다. 흔히 전쟁을 혐오하는 지식인의 양심과 일반적 정서가 군대와 직업군인에 대한 편견으로 직결되기 쉽다. 그러나 키퍼의 예에서 보듯이 이른바 지식인으로 자처하고 있는 사람 중에는 자신은 어떤 희생도 책임도 지지 아니하는 비겁한 인간이 많다. 직업군인에 대한 경멸에 가까운 지식인의 냉소는 따지고 보면 이러한 도덕적 열등감의 발로일지도 모른다.

영화가 시작하면서 "미 해군 역사상 선상반란은 한 건도 없었다."라는 자막이 비친다. 이 영화가 제작된 것은 2차대전이 종결된 지 오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군의 사기를 보호하려는 의도를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2건의 항명, 반란사건이 발생한 역사적 기록이 있다. 1842년에 Somers사건과 1849년의 ESS Ewing사건이다.

특히 Somers 사건은 당시 정가에 초미의 관심사였고 허만 멜빌의 작품, 《White Jacket》와 《빌리 버드》(Billy Budd, Sailor)의 소재가 되었다. USS Somer호에 승선했던 장교 한사람과 수병 셋이 반란혐의로 약식 군사재판 끝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주범으로 사형을 당한 청년 장교, Philip Spencer는 현직 전쟁장관(Secretary of War), John Spencer의 아들이었다. 유능한 법률가로 후일 알렉시스 도끄빌(Alexis Tocqeville)의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Democracy in America, 1896)의 편집자이기도 한 스펜스 장관은 아들을 처형한 함장 Mackenzie를 살인혐의로 법정에 세운다. 서둘러 약식재판을 치를 만큼 위급한 상황이 아니었고 불과 나흘만 항해하면 뉴욕항에 정박할 거리에 있는데도 서둘러 약식재판 끝에 형을 집행한 데 대한 의혹과 불만의 여론이 팽배해 있기도 했다. 맥켄지는 무죄 판결이 났지만 대중은 승복하지 않았다. 멜빌의 《White Jacket》에도 1인칭 화자가 항명, 반란의 권리를 주장하고 나선 것은 이 사건을 빗댄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대학사회에서도 필립 스펜스는 전설적 영웅이 되어 있기도 하다. 엄청난 지적 탐구에 몰두하던 대학생이 모험의 길을 찾아 해군에 입대했고 그의 지적 상상력과 다소 치기 어린 영웅심을 수용하지 못하는 군대의 희생물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따금씩 스펜스의 억울한 원혼이 대학 주변을 배회한다는 괴담도 있고 심지어는 그를 시조로 받드는 대학의 동아리(fraternity)도 있었다. 스펜스 장관도 이루지 못한 아들의 복수사건으로 인해 자신의 정치적 생명에도 큰 타격을 받았다. 그는 1844년 연방대법원 판사의 지명을 받았으나 이 일로 부담이 되어 상원의 인준에 실패한 것이다.

영화 《케인호의 반란》은 전쟁과 군인의 시대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서고 있는 시점에 깊이 음미해 볼 영화이다.

<서울대 법대 교수>ahnkw@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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