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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7월 31일 19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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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법조계에서는 6·25전쟁 당시 월북한 동생의 호적을 되살리려는 김재환씨(70)와 북에 남긴 처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싶어 후처의 자식들을 상대로 소송까지 냈던 손모씨(7월 86세로 작고)의 사연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소식이 전해지기 무섭게 혈육을 위해 '법'을 찾았던 두 사람. 반평생을 혈육을 그리며 살아왔던 이들의 송사(訟事)를 성미 급한 사람들의 아주 특별한 경우로만 받아들일 수는 없다.
김씨는 언젠가는 다시 만날 동생을 위해 어머니의 묘를 워커힐호텔에서 가까운 경기 하남시에 쓰기도 했다. 언젠가 동생이 고향방문단에 포함돼 그 호텔에 묵을 경우 잠깐이라도 성묘를 하게 해 주자는 마음에서였다.
6·25 당시 월남해 자수성가했던 손씨 역시 평생 모은 백수십억원의 재산 가운데 30억원대의 재산을 북한의 전처와 세 자녀 몫으로 남겨 두었다는 것.
해방 후 휴전협정 당시까지 월남한 사람은 500여만명. 이들 중에서 조만간 제2, 제3의 김씨와 손씨가 나올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50년 가까이 기다려온 이들에 비해 우리의 ‘법’은 아직 준비가 돼 있지 않다.
98년 이산가족의 호적과 중혼(重婚), 상속문제 등을 연구했던 대법원은 ‘50년 분단이라는 현실을 고려한 특별법이 제정돼야 한다’는 당위론만 제기했을 뿐이다.
대다수의 법조인은 “문제가 이렇게 빨리 나타날 줄은 몰랐다”며 “하루빨리 공개적인 토론을 통해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법조인들은 또한 북한측도 이제는 북한 거주 이산가족들이 남한의 가족을 만나 함께 살게 되는 경우를 상정한 법적 준비에 착수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한다.
남북 당국은 31일 끊어진 경의선을 다시 잇는 데 합의했다. 양측은 끊어진 가족간의 법률적 연결고리를 잇는 데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신석호 사회부>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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