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Digital]'애국' 앞세우다 국제망신 당할라

  • 입력 2000년 7월 20일 18시 50분


▼쇠고기 원산지 표기…"위장된 수입제한" WTO협정 위반소지▼

‘한우 갈비 000원’ ‘미국산 갈비 XXX원’ ‘호주산 불고기 △△△원’.

이처럼 음식점 메뉴판에 쇠고기의 원산지를 표시해 값을 따로 받도록 하면 어떨까.

소비자 단체 등은 소비자의 알권리와 국내 육류 유통시장의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 꼭 필요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농림부도 올해 6월 이같은 논리를 식품위생법 개정안에 반영시켰다. 보건복지부의 식품위생법 시행규칙 개정과정에서 ‘쇠고기를 전문적으로 구워 파는 일반음식점에서는 가격표에 수입산 여부를 표시’하도록 하는 내용을 추가하도록 한 것.

농림부와 보건복지부는 이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통과되면 내년 1월부터 전국 9만여 한식집에서 고기를 팔 때 원산지를 명시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할 때는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도록 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그후 입장이 다른 정부 부처간의 논쟁에 휩싸였다. 외교통상부가 통상마찰의 소지가 있다며 강력히 반대하고 나선 것. 외교통상부는 쇠고기를 파는 일반음식점에서 가격표에 쇠고기 수입선을 표시하도록 하는 조치는 ‘위장된 수입제한 조치’로 세계무역기구(WTO)협정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이 개정안은 현재 규제개혁위원회에 넘겨져 검토중인데 금명간 결론이 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제는 법조계에서도 관심거리다. ‘논리’ 외에 ‘법리’도 쟁점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펌(법률회사) 소속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이 시행규칙 개정안의 국제 통상법규 위반 여부를 놓고 열띤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법조계의 대체적 견해는 통상법규 위반으로 WTO의 제소나 교역국들의 보복조치를 야기시킬 수도 있다는 쪽. 그 근거로 제시되는 것이 85년 유럽사법재판소(ECJ)의 판결(판결번호 207/83, ECR1201)이다. 영국 정부가 수입식품에 대해 반드시 원산지 표시를 해 판매하도록 한 조치에 대해 유럽공동체(EC)가 제소를 하자 ECJ는 영국정부에 패소판결을 내렸다. 이유는 “영국정부의 조치는 소비자들에게 국내제품과 수입제품을 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인식하도록 함으로써 수입제품에 대한 편견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는 것.

수입제품이 국내산으로 둔갑,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문제에 대해 ECJ는 “그런 문제는 허위 원산지 표시를 처벌하는 별도의 법령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남북간 교역은…'별도국가' 불공정 분쟁 가능성▼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경제협력의 물꼬가 터질 전망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남북한의 교역규모는 3억3000만달러로 남한은 중국과 일본에 이어 북한의 3번째 교역 상대국이다.

정부는 정상회담 이후 투자보장협정과 이중과세 방지협정, 청산결제 절차 등 제도적 장치마련을 논의중이다.

그러나 남북의 경제교류는 관세 등의 복잡한 문제와 관련법이 정비되지 않으면 국제통상마찰을 불러올 소지가 있다.우리입장에서는 남북간의 경제교류가 ‘휴전선을 넘어 물품을 사고파는’ 단순한 동포간의 교역으로 볼수도 있으나 국제적인 관점에서는 이같은 주장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정한다’는 헌법 3조의 규정에 따르면 북한과의 무역은 지역간 내부교류에 지나지 않는다.

이같은 특수성 때문에 정부는 대북경제교류를 무관세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오고 있다. 남북한은 통일을 추진하는 특수관계에 놓여있어 민족내부의 거래로 자유무역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WTO(국제무역기구) 등 국제사회의 입장은 다르다. 이들은 92년 남북합의서의 성격과 북한의 유엔가입 등으로 볼 때 북한이 하나의 국가로 인정되는 만큼 무관세 교역은 WTO 협정에 명시된 최혜국대우원칙과 내국민대우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북한에서 무관세로 수입하면 다른 국가에도 똑같이 무관세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

통일부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무관세교역이나 무상원조가 무리없이 진행돼 왔지만 앞으로 규모가 커질 경우 외국기업들이 ‘불공정 거래’라며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통일 전 독일은 1950년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에 가입할 당시 동서독간의 무역이 일종의 ‘내부거래’라는 사실을 다른 회원국들로부터 인정받아 무관세 거래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GATT 가입당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한국은 독일과 같은 식으로 대응할 수 없는 상태.

국제통상 전문가들은 북한과의 자유무역협정(FTA)체결을 해결책으로 모색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자유무역협정은 정치적으로 ‘낮은 단계의 남북연합’과도 성격이 일치해 남북한 교류에 따른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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