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공직자의 벤처 '투자'

  • 입력 2000년 7월 18일 18시 37분


벤처기업 중에는 일반 엔젤 투자자가 아니라 회사가 커나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주주 모집을 하기도 한다. 비상장 법인의 경우 10억원 이하의 주식을 사모(私募)할 수 있는 증권거래법 규정을 이용해 거래처나 관련기관의 임직원을 주주로 끌어넣는다. 자본금을 늘리면서 거래처나 관련 기관에 근무하는 주주들로부터 유형 무형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일석이조의 증자(增資)인 셈이다.

▷이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올해 초 공직자 재산변동 신고 때도 벤처기업 주식을 보유한 고위 공직자들이 여럿 나타났다. 비상장 벤처기업이 코스닥시장에 등록한 뒤에는 주가가 크게 뛰는 것이 상례다. 주식을 싸게 산 뒤 유무상 증자가 몇 차례 거듭되다가 코스닥 등록이 되면 투자한 금액의 수십배까지 챙길 수 있다. 공직자들은 재산변동 신고가 겁나 친척 등의 명의를 빌려 벤처기업의 주주 명부에 올려놓기도 한다는 보도도 있다.

▷대구시는 작년 말 근무시간 중 업무용 컴퓨터로 사이버 주식 거래를 하는 행위를 막기 위해 주식사이트 접근을 차단하는 방화벽을 설치하는 방안에 대해 직원들의 의견을 물었다. 근무기강 해이와 관련한 사안인데도 직원들의 찬반 견해가 반반으로 엇갈렸다. 공무원의 주식투자는 시장에 그릇된 신호를 보낼 수도 있다. 경제정책과 기업정보에 정통한 공무원이 주식을 사면 그 종목에 뇌동매매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기업관련 업무를 다루는 공무원들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에 투자하는 행위는 현행 증권거래법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공직자윤리위원회는 기업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공직자의 내부거래 혐의에 대한 조사를 금융감독원에 의뢰할 수 있도록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다듬고 있다. 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은 “경제부처 공무원은 국민벤처 펀드처럼 일반 금융상품을 사는 것은 몰라도 벤처기업에 지분을 투자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한 바 있다. 벤처 주식에 관심이 많은 공무원들은 아예 스톡옵션을 받고 기업으로 근무지를 옮기는 것이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서나 개인의 재산형성을 위해서 여러모로 효율적일 것이다.

<황호택논설위원>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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