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신광기업,소액주주가 경영권 장악

  • 입력 2000년 7월 17일 18시 50분


회사 주식의 0.1∼5.5% 지분을 가진 투자자들이 집단으로 뭉쳐 사실상 경영권을 장악한 사례가 발생했다.

소액주주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시민단체의 활동은 있어 왔지만 기업주의 경영에 반기를 든 주주들이 경영권을 직접적으로 위협한 것은 국내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조명기기 제조업체인 신광기업은 이달 14일 임시 주총을 열고 박태균씨 등 투자자들이 추천한 5명을 새로운 이사로 선임했다. 이 회사의 기존 이사는 4명. 수적으로 우세한 투자자들이 사실상 경영권을 장악한 셈이다.

신광은 97년까지 국내 2위의 조명업체였다. 그러나 네덜란드 필립스사와의 합작이 깨지고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경영난에 허덕이다 98년 7월 화의에 들어갔다. 97년말 2만5000원선이던 주가는 이 무렵 600원까지 곤두박질쳤다.

박씨 등 투자자들은 충분한 기술력과 45년 역사를 가진 회사가 부실해진 것은 경영 잘못 때문이라고 회사를 몰아붙였다.

회사측은 올해 3월 정기주총에서 이사수를 5인 이내로 제한하는 정관 변경안을 내놓았다. 성덕수회장 등 기존 이사가 4명이기 때문에 변경안이 통과되면 성회장은 확실한 과반수 이사를 확보하게 되는 셈.

그러나 주총에 참석한 박씨 등 52명의 주주는 회사측의 안을 부결시켰다. 이들 52명의 지분은 32.34%로 성회장과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합한 30.14%보다 많았다.

박씨는 정기주총이 끝난 뒤 경영진을 교체하는 ‘대표이사불신임’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주주 120명으로부터 위임장을 받아냈다.

위기를 느낀 회사측은 박씨 등과 협상을 시작했다. 성회장은 “외국 기업의 적대적 인수합병 움직임과 투기 목적의 국내 작전 세력이 있어 경영권 수호 차원에서 정관을 변경하려 했던 것”이라고 박씨 등을 설득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오랜 협상 끝에 박씨 등 투자자들은 현재의 경영진을 그대로 두는 대신 자신들이 추천한 5명의 이사를 새로 선임하는 선에서 타협했다. 성회장 등 기존 경영진의 입장에서는 일단 경영권을 지킨 셈. 그러나 수적으로 열세이기 때문에 양측이 충돌할 경우 투자자들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회사측은 박씨 등이 의결권 행사를 목적으로 공동으로 지분을 매입했다며 금융감독원에 고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금감원의 판단은 ‘공동 보유 목적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 금감원의 박태희 조사2국장은 “주식 매집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은 경영진이 신중한 경영을 하도록 견제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며 “정부는 ‘시장’이 경영을 판단하도록 적대적 인수합병을 활성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박국장은 그러나 “자칫 회사 경영에는 관심없이 차익만을 노리는 투기적 작전세력에 악용되거나 경영 외적인 이유로 기존 경영진을 무조건 몰아내는 수단이 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승진기자>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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