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영태/정통부의 애매한 선정 기준

  • 입력 2000년 7월 16일 19시 58분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계량화할 수 있죠? 마음에 드는 회사 순서대로?”

최근 한국을 방문한 미국 노스웨스턴대 애너벨 다드 교수는 한국의 기간통신사업자 선정방식을 두고 이 같은 의문을 제기했다. 통신정책 분야 전문가인 그는 “미국이 경매제 방식을 채택한 이유는 각종 특혜 시비를 잠재우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정보통신부는 최근 차세대이동통신(IMT2000) 사업자 선정 심사기준 초안을 내놓았다. 2월초 전담반을 구성한 뒤 5개월여 동안의 작업 끝에 나온 방안이다.

정통부는 심사의 투명성을 강조하기 위해 22개 세부적인 계량 비계량 항목을 공개하면서 배점까지 명시했다. 계량 항목은 컴퓨터로 점수를 매기며 비계량 항목은 심사위원들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점수를 매긴 뒤 평균을 낸다는 것. 102점 만점에 소수점 이하 세 자리까지 꼼꼼하게 채점하겠다는 기준도 나왔다.

그러나 꼼꼼히 들여다보면 96년 개인휴대통신(PCS)사업자 선정 당시 문제가 됐던 부분은 그대로 남아있다. 전체평점의 81.4%가 비계량 배점 부분이기 때문이다. 총점 102점 가운데 83점은 구체적인 수치로 잴 수 없는 ‘애매한’ 부분이라는 이야기다.

96년에는 계량 비계량 방식 외에 필요하면 기업 관계자를 불러 물어보는 청문방식까지 동원됐다.

그러나 사업자 선정 발표 얼마 뒤 탈락한 회사들이 거세게 항의하면서 뒤늦게 채점 내용을 공개해야 했다. 결과는 비계량 부문에서 압도적으로 점수를 더 얻은 LG가 삼성과 현대 연합의 에버넷을 1.83점이라는 간발의 차로 누르고 사업권을 획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대대적인 검찰수사가 있었고 4년이 지난 올해 초까지 국회청문회에 올랐다.

불확실성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똑같은 문제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유리알’처럼 투명한 심사기준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영태기자>ebizwi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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