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월드]한국인 캐나다 경유 美밀입국 급증

  • 입력 2000년 7월 16일 19시 18분


97년 한국이 금융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에 들어간 이래 미국과 캐나다 국경을 통해 미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는 한국인들이 크게 늘고 있다.

미국 이민귀화국(INS) 소속 국경순찰대는 7일 관광객을 위장, 캐나다 밴쿠버를 통해 미국시애틀쪽으로 밀입국하려던 한국인 21명을 적발, 이중 미국 내에 가족과 친지가 있는 어린이 4명과 보호자 등 7명은 보석금을 내는 조건으로 임시 석방하고 나머지 14명은 시애틀 연방이민국 교도소에 가뒀다.

적발된 사람 중에는 미국에서 장기간 불법 체류하는 아버지를 난생 처음 만나기 위해 찾아 왔던 최모군(16)도 포함돼 있었다.

선원 출신인 최군의 아버지(41·뉴욕 거주)는 '아메리칸 드림' 을 좇아 83년 아내를 한국에 둔 채 단신으로 미국에 왔다. 그후 태어난 최군은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고 할머니 품에서 자랐으나 할머니마저 숨진 뒤 고아처럼 지내야 했다.

최군의 아버지는 영주권을 얻어 최군을 데려오기 위해 16년간 백방으로 애를 썼으나 소용이 없자 밀입국 전문 브로커에게 의뢰했다가 적발된 것.

최씨는 불법 체류자라는 사실이 밝혀져 미국에서 추방될 것을 감수하고 11일 최군이 수감된 교도소로 와 난생 처음보는 아들과 눈물의 상봉 을 했다.

이번에 적발된 밀입국 시도자들은 서울과 밴쿠버 시애틀을 연결하는 불법이민조직에게 1인당 4000만∼1만2000달러(약 440만∼1320만원)를 지불한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국경수비대의 리차드 그래험은 "캐나다를 통한 미국 밀입국은 통상 3,4명 정도의 소규모로 이뤄진다"며 "한꺼번에 21명이 적발된 것은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캐나다-미국을 통한 밀입국 실태▼

로스앤젤레스 뉴욕 등 한인 밀집 지역의 교포 언론엔 제3국(캐나다 멕시코)을 통한 한국 자유왕래 비자취득 보장 불법 신분자의 합법적인 본국 왕래 보장 등의 광고가 자주 실린다. 이들 업소들 중 일부는 이번 적발 이후 단속을 우려, 잠적했다.

워싱턴 주재 한국대사관 등에 따르면 캐나다를 통한 미국 밀입국은 94년 한국과 캐나다간에 무비자 입국제도가 체결돼 한국인들이 무비자로 캐나다에 6개월간 체류할 수 있게 된 이후 급증하고 있다.

한인들이 일단 관광객을 위장, 캐나다에 온 뒤 밴쿠버-시애틀-로스앤젤레스를 잇는 서쪽 루트나 토론토-나이아가라 폭포-뉴욕을 잇는 동쪽 루트를 통해 미국 밀입국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

미국과 캐나다 사이의 국경은 4000마일(약 6400km)에 이르지만 밀입국을 감시하는 국경순찰대는 311명에 불과하다.

국경순찰대는 항공기 야간투시레이저 등의 장비를 동원, 98년 캐나다 국경을 통한 밀입국자 1만2000명을 적발했으나 사실상 캐나다 국경은 뻥 뚫린 상태나 다름 없다. 중남미 출신의 밀입국을 막기 위해 주요 루트에 삼엄한 철책이 처진 멕시코 쪽 국경에 비하면 캐나다쪽 국경은 거의 무인지경이나 다름 없기 때문.

미 이민국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 5월까지 밀입국 불법체류 입국거부 등으로 추방된 한국인은 109명으로 집계됐다.

한 이민변호사는 "밀입국자가 적발되는 확률은 상당히 낮은 편이기 때문에 실제론 훨씬 많은 한인들이 밀입국할 것"이라며 "내가 다루는 일의 절반 정도는 불법입국한 뒤 합법적인 신분 획득을 원하는 한인들을 상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 이민귀화국은 미국 내 한인 불법체류자의 숫자를 3만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밀입국 이후▼

대부분의 밀입국자들은 로스앤젤레스 뉴욕 등의 싸구려 하숙집 등을 전전하며 단속의 눈길을 피해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

성인들의 경우 불법적인 신분 때문에 노동력을 착취당해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아이들은 연방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고교까지는 졸업할 수 있으나 대학진학은 막힌 상태.

미 정부는 84년 불법체류자들을 사면, 영주권을 부여한 일이 있으나 언제 추가 사면이 있을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또 사면을 받으려면 미국 체류 증빙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등 요건이 까다로운 편.

워싱턴 DC의 전종준(全鍾俊)변호사는 "무조건 미국에만 가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밀입국한 뒤 고민하는 한인들이 상당히 많다"며 "불법입국을 한 경우에는 구제방법이 전혀 없다"고 경각심을 일깨웠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