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삼성 군기반장' 김기태 삭발 투혼

  • 입력 2000년 7월 6일 18시 21분


많은 야구인들은 삼성 선수단을 ‘모래알’ 이라고 불렀다.

아무리 노력해도 잘 뭉쳐지지 않는 팀분위기를 빗댄 말.실제로 그동안 삼성엔 스타만 있고 팀은 없었다.예전부터 날고 긴다 하는 선수들이 모두 모인 구단이 바로 삼성이었지만 단 한번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런 면에서 김기태(31)라는 선수는 삼성 라이온즈의 체질개선에 적합한 인물이다.그는 자신의 기록보다 팀 승리를 먼저 챙기고 후배들 일에 항상 앞장서는 스타일.

쌍방울 출신으로 굴러온 돌 이나 마찬가지지만 희생정신이 강한 그가 올해 주장을 맡고부터 삼성 선수단의 분위기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단적인 예가 바로 대전 한화전에서의 6·25퇴장사건 .

김용희감독,계형철 이순철코치가 심판판정에 항의해 무더기로 퇴장당한 이 사건은 팀이 하향곡선을 그리는 순간에 발생,삼성으로선 커다란 위기였다.이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돌파구가 된 게 바로 김기태였다.

그는 이튿날 대구로 돌아오자마자 고등학생처럼 ‘까까머리’로 삭발을 했다.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었다.당시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갔다는 게 김기태의 얘기.

선수들에게 미팅을 통해 삼성은 실력과 저력이 있는 팀이라는 점을 강조했어요.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도 못하는 건 여러분들 잘못 아니냐며 분발을 촉구했죠.

위기뒤의 찬스 라는 야구격언처럼 신기하게도 삼성은 6·25사건 뒤 벌떡 일어섰다.6월28일 대구 SK전부터 7월5일 대구 두산전까지 9게임 무패행진(7승2무).

이 기간동안 김기태 개인적으로도 의미있는 기록이 하나 수립됐다.역대 최소경기 2000루타 돌파가 그것.김기태는 5일 두산경기에서 4타수 3안타로 팀승리를 이끌며 1070경기만에 2000루타를 달성했다.91년 프로에 입단했으니 10년만에 이뤄낸 대기록.

김기태는 이날 경기가 끝난뒤 엊그제 프로에 온 것 같은 데 벌써 세월이 그렇게 흘렀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더군요 라며 쑥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대구=김상수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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