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재웅/금융지주회사 반대 명분없다

  • 입력 2000년 7월 5일 19시 04분


금융노조가 11일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했다. 그 전에 정부와 노조간에 어떤 타협이 이뤄질지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쌍방이 파업강행과 엄정대처로 팽팽히 맞서고 있다.

금융노조의 파업결의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금융지주회사 도입으로 통합대상 은행들의 인사·조직 축소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은 노조를 달래기 위해서 지주회사를 도입하더라도 조직 및 인원의 감축은 없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중복점포나 조직 인력의 감축없이 통합은행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지 궁금하다.

가령 지주회사를 기둥으로 은행 증권 보험 등 이종(異種)금융기관을 통합한다면 조직 인력 감축 문제는 심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공적자금을 투입한 은행들을 통합하려는 것이다. 이들간의 전산(IT)투자 등의 중복투자만 줄여도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것이다.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조는 정부의 주장을 믿지 않는다. 노조가 지주회사 도입에 반대하는 것은 논리도 명분도 약하다. IMF 금융위기 이후 금융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수많은 은행직원들이 직장을 잃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은행이 경쟁력을 잃는다면 노조도 살아남을 수 없다. 은행의 경쟁력 제고만이 살 길이며 금융지주회사 도입은 이를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지주회사 도입은 금융의 대형화, 겸업화, 전문화를 용이하게 하는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진국들도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은행이 지주회사 아래에서 하나의 자회사로 있으면 독립적인 상태로 자율경영과 책임경영이 가능하며 다른 금융지주회사와 결합, 운영이 용이해서 규모의 경제도 추구할 수 있다. 금융 자회사를 통한 업무영역도 확대돼 전문화와 위험분산도 촉진된다. 조직과 경영의 유연성이 높고 자회사간의 부실 확산이나 이해상충을 예방하는 차단벽이 설치돼 건전경영이 가능하다. 지주회사를 통해서 금융전업자본의 형성을 촉진하고 대기업의 사금고화를 막을 수도 있다.

물론 금융지주회사의 도입과 노조가 주장하는 관치금융은 별개의 사안이다. 따라서 은행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도입하는 금융지주회사 자체를 노조가 반대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우리 사회에서는 요즈음 모든 문제를 집단적인 투쟁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만연하고 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한 의사들의 집단폐업, 호텔노조의 불법파업, 대학생의 등록금투쟁 등 집단이기주의가 계속된다. 김대중대통령도 무리한 집단이기주의는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경고하지만 신통력이 없는 것 같다.

특히 이번 금융노조의 금융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투쟁이 성공할 경우 금융개혁이 후퇴하는 것은 물론이며 기업 노동 공공부문 등 모든 부문의 개혁이 물 건너 갈 것이다. 이미 금융부실을 해소하기 위해서 64조원의 공적자금을 국민이 부담했으나 은행부실이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국민부담도 계속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국경제에 대한 우리의 희망이나 대외신인도가 추락하고 또 다시 경제위기를 맞게 될 우려가 적지 않다.

이재웅<성균관대 부총장·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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