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은찬/DJ, 사람 봐가며 만나세요

  • 입력 2000년 6월 26일 19시 34분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을 만나 대화하고 좋은 아이디어를 구하고 정감을 나누는 일이 필요하다. 그런데 사람을 만남에 있어서는 때에 따라 구분해서 만나고 각자 자신의 시간을 적절히 사용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특히 만나는 일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가 클 때에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남북정상회담은 두 정상의 만남 자체만으로도 국민을 흥분시키고 앞으로 전개될 일에 대해 희망을 갖게 했다. 김대중대통령은 노구에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면서 남북의 공존공영과 교류증대 등의 합의를 끌어내는 수고를 했다.

정상회담 이후 김대통령이 야당대표 등을 청와대로 초청해 방북결과를 설명하는 자리를 갖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마음에 걸리는 것은 전직 대통령들을 초청해 자문하고 이해를 구하는 대목이다.

대통령은 국민적 통합을 기해야 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 설명하고 이해를 구할 수 있다. 또 시야와 생각의 폭을 넓히기 위해 전직 대통령들의 경륜과 식견을 듣는 것도 필요하고 좋은 일일 수 있다. 그러나 한두 명을 제외한 전직 대통령들은 역사적으로 정통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가 되는 전직 대통령들은 대통령 재임기간에 이룩한 공도 있지만, 정권창출 과정에서 법질서를 문란시켰고, 민주화를 지연시켰으며,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를 심화시켰다. 그래서 그들은 법정에 서게 됐던 것이다. 그들은 지금도 재판 결과 부정하게 거둬들인 돈을 추징하는 과정에 제대로 응하지 않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전직대통령과 대통령의 만남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전직 대통령이라고 초청해 식사하면서 대화하는 것이 우리의 윤리의식과 질서의식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과의 만남을 통한 국민적 통합을 기하려는 종래의 방식에서 벗어나 대통령은 좀 더 자신감을 갖고 만나는 인사들을 선별함에 있어 윤리성과 현실적 필요성을 충분히 고려함으로써 윤리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들을 좀 더 자중하게 하는 선례를 남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여기서 이런 문제를 거론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과거 잘못을 용서하지 않고 계속 미워하고 매도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용서는 하되 그들에게 과분하게 대하여 국민의 윤리의식과 법질서의식을 흩뜨리고 혼란을 일으키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전직 대통령들이 재산환수에 응하는 태도를 보면서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성공적인 리더십을 위해서는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좀 더 잘 할 수 없느냐는 등 늘 혁신적으로 생각하고 실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치지도자들은 좋은 정신적 전통을 세우고 이를 유산으로 계승해 가는 일에 대해서도 새롭게 접근하고 실천해서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런 일은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에 있어서 작지만 새로운 변화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은찬(경영컨설턴트·한국리더십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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