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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6월 25일 19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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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정부 산하 에너지 관련 기관의 대북 사업팀을 찾았다. “뭐 해드릴 얘기도 없는데….”
기자를 맞은 팀장은 난감하다는 표정부터 짓는다. 벽에 걸린 큼지막한 북한 지도가 눈에 들어온다.
“아주 단단히 준비하고 계시는 모양이군요.”
“저런 거라도 갖다 놔야 분위기라도 낼 수 있을 것 같아서….”
농담반으로 운을 떼자 웃음으로 받아넘기면서 이내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사실은 정말 답답합니다. 기껏 언론에 나온 얘기들을 스크랩하는 정도예요. 그나마 그것도 정확한지 모르겠고….”
갑갑해서 탈북자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지만 내용이 모두 다르단다.
“일단은 그쪽 사정을 정확히 알아야 구체적인 걸 짜보지 않겠습니까.”
장면 둘.
남북경협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의 과장들과 식사를 하다가 화제가 경협으로 옮아갔다. 경협 준비 때문에 많이 바빠지겠다고 말하자 하소연처럼 대답한다. “글쎄, 얘기들은 많은데 무엇부터 해야 할지….”
당면한 어려운 점을 묻는 질문에 한 과장이 “우리 기업들이 너무 손해를 안보고 장사를 하려는 게 문제”라며 “모든 걸 정부에 의존하려고만 한다”고 대답하자 다른 과장이 즉각 반론을 걸어왔다. “아니, 그렇게 감성적으로 봐서는 곤란하지.”
기자는 제쳐두고 어느새 담당 과장들끼리 논쟁을 벌인다.
“아무리 경제논리가 중요하다고 해도 민족적 관점에서 생각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는 오래 못간다. 경협은 냉정하게 ‘실리’ 위주로 접근해야 서로간에 후유증 없이 오래 갈 수 있다.”
두 장면이 보여주는 것은 무엇일까. 남북경협의 ‘당위’와 ‘현실’간의 마찰인가. 혹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말한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머리’의 조화가 쉽지 않다는 걸 새삼 일깨워 주는 걸까.
남북경협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안개 속 험로’로 남아 있다.
이명재<경제부기자> 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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