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성훈/"국군포로는 있다"

  • 입력 2000년 6월 22일 19시 27분


분단 후 처음 열린 남북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 중의 하나로 이산가족의 상봉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산가족 문제와 비전향 장기수 송환 문제는 공동성명에 포함될 정도로 회담에서 다뤄졌지만 미귀환 국군포로 문제는 소홀히 다뤄져 국군포로 가족들이 실망하고 야당도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朴통일, 북한 논리 따른 셈▼

이 문제와 관련해 박재규 통일부장관은 20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국군포로는 법적으로 없다”고 말했다. 그는 포로문제가 이미 6·25전쟁 직후 남북한의 포로교환으로 공식적으로 끝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을 ‘넓은 의미의 이산가족’으로 파악해 이산가족 차원에서 해결하자는 입장인 듯하다. 이 때문에 국회에서 크게 논란이 일어났고 국방부의 반발을 초래하였을 뿐만 아니라 북한과의 협상에서도 다음과 같은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첫째, “국군포로는 법적으로 없다”는 인식은 휴전협상 당시부터 최근까지의 ‘사라진 국군포로’의 행방을 찾기 위한 노력을 수포로 돌리는 처사이다. 유엔군측은 휴전협상부터 줄곧 ‘사라진 국군포로’ 문제를 제기했고, 상병포로들이 귀환했을 때 그들을 상대로 억류포로의 수를 조사해 휴전협정이 체결된 뒤인 1953년 9월9일에도 그 중 일부를 공산측에 석방을 요구했다.

그 후 1970년대 초까지도 정전회담에서 이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공산측은 모든 포로를 송환했다고 선언하면서, 오히려 공산포로를 강제 억류하고 있는 점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1994년 국군포로였던 조창호 소위가 탈북해 오면서 국군포로의 존재가 구체화돼 국군포로 송환대책위원회가 설치되었고 ‘국군포로 예우에 관한 법’이 제정됐으며 비전향 장기수와의 맞교환까지 제기됐다. 그러나 북한은 휴전협상과 정전회담에서처럼 여전히 “국군포로가 한 명도 없다”고 반박했다. 박장관은 이런 북한측의 논리를 공인해 준 셈이다.

둘째, “지금은 포로가 아니고 넓은 의미에서 이산가족”이라는 논리는 북한이 국군포로의 존재마저도 인정하지 않는 현실에서 이 문제를 이산가족 차원에서 해결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포로’를 이산가족의 범주로 처리해 귀환을 허용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셋째, 박장관은 포로들이 결혼해서 아들 손자까지 얻어 생활하고 있으므로 정상적인 것처럼 표명했다. 그러나 양순용씨 등 국군포로와 다른 탈북자들의 증언에서 드러난 것처럼 돌아오지 못한 포로 중 상당수가 북한에서 강제노역을 당하고 있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비전향 장기수들의 인권이 소중하듯이 미귀환 국군포로들의 인권도 보호돼야 한다.

이제라도 정부는 미귀환 국군포로 문제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이 문제가 발생한 것은 일차적으로 북한의 포로정책 때문이다. 최근 밝혀진 것이지만 전쟁 1주년을 맞이해 북한군 총사령부는 유엔군 포로가 모두 10만8257명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다소 과장됐을 수 있고 사망자나 전선에서 석방된 사람도 있겠지만, 나머지 포로는 여전히 많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당히 송환 요구해야▼

그런데 북한측은 국군포로 중에서 상당수를 북한군에 입대시키거나 주민으로 편입시켜서 포로명단을 교부할 때 전체 유엔군 포로가 단지 1만1559명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국정부나 유엔군측도 크게 반발했으나 휴전협상에서 양측이 한 명의 포로라도 더 확보하려는 ‘포로 쟁탈전’으로 대립하는 가운데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대결의 논리에서 벗어나 평화와 화해의 시대를 모색하기 위해 남북이 공동선언을 하였다.

냉전의 희생자들인 비전향 장기수 문제의 해결과 마찬가지로 미귀환 국군포로 문제 등에 대해서 당당히 요구할 때가 됐다. 이제 포로의 전체 규모와 생존자 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북한측도 “국군포로는 한 명도 없다”는 냉전논리에서 벗어나 책임있는 답변과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조성훈(한남대 강사·한국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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