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존]평범한 외모, 강렬한 연기 '에드워드 노튼'

  • 입력 2000년 6월 21일 11시 18분


가엾은 희생양. 철길 아래 늘어져 텅 빈 눈동자를 벌리고 있는 이 소년을 누가 치밀한 살인자라고 생각할까. 말할 수 없던 고통은 마음 속에 가라앉아 돌덩이처럼 단단하게 응축되고, 흰 얼굴의 소년은 모든 감정을 비워 버린 듯 방어마저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눈 밑에 깊은 그늘을 담은 이 희생자 앞에서는 닳고 닳은 변호사마저 말을 잃는다. 그러나 순진한 소년을 살인으로 몰고 간 비밀이 드러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프라이멀 피어>의 에드워드 노튼(30)은 마지막 장면만으로 영화 전체를 뒤집는다. 그 단정한 얼굴로, 어떤 암시조차 주지 않은 채.

노튼은 이처럼 마음을 읽을 수 없는 배우다. 고생의 흔적이라고는 없이 깨끗하기만 한 그의 얼굴은 노튼 자신의 말대로 "영화의 시작을 열기에는 적합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대신 무엇이든 채워 넣을 수 있는 여백이 있다. 웃을 때마다 작은 빛이 반짝거리는 선량한 눈동자와 틀에 맞게 짜여진 얼굴선, 부드럽게 내려 앉은 눈썹은 일탈과 거리가 멀다.

악한 감정을 품지 않았을 때의 노튼은 안락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 예일대를 졸업한 출신 성분을 그대로 드러낸다. 우디 앨런이 감독한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는 그의 실제 모습에 가장 가까운 영화일 것이다. 착하기만 한 드류 배리모어의 약혼자를 연기한 이 영화에서 그는 헌신적이고 계산 없는 사랑을 준다.

밀로스 포먼과 함께 한 <래리 플린트>에서도 그는 플린트에게 휘둘리는 변호사를 연기하면서 "지성과 본능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잡아 포먼을 감복시켰다. 동료 배우 드류 배리모어에 의하면 그는 "할리우드의 황금기를 되돌아 보게 하는 고전적인 배우"이며 "완벽하게 순수한 사람"이다.

그러나 노튼은 연쇄살인범은 평범한 외모를 가졌다는 FBI 수사 파일을 몸으로 입증하는 예이기도 하다. <칼리포니아>의 브래드 피트처럼 분노로 흔들리는 에너지를 방출하지도 않고 <헨리 : 연쇄살인범의 초상>의 마이클 루커처럼 변방으로 떨어져 있지도 않지만, 차갑게 냉소하는 <프라이멀 피어>의 노튼은 절제되고 눈에 띄지 않아 더욱 섬뜩하게 다가 온다.

그 외모 때문에 방심했던 관객은 마음의 준비를 한 후 그의 다음 영화를 바라보겠지만, 그 순간 그는 어떤 것도 숨기지 않으면서 선명한 증오를 내뿜는다. 그는 솔직한 분노를 터뜨리는 스킨 헤드이기도 하며(<아메리칸 히스토리 X>) , 비열하지만 밉지 않은 도박사가 되기도 한다(<라운더스>). <파이트 클럽>의 얌전한 잭에게서도 관객은 억누르지 못한 폭력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강철같은 고요 후에 침묵의 기운을 갈라 놓는 충동이 밀려 드는 것이다.

"누구와도 다른 연기를 펼친다"고 평가받는 노튼은 감독이 욕심을 낼 수 밖에 없는 배우다.

그러나 노튼의 여백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백지와 다르다. 그는 이전의 경험을 말끔히 지워버린 것 같으면서도 영화마다 깊이를 더해 간다. 연기란 "완전히 비어 있는 방에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생각하며 "관객이 배우에 대해 아는 것이 적을 수록 그가 연기하는 인물을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고집하는 배우.

그는 희미해질 수도 있었을 외모로 관객을 느긋하게 만들다가도 순간을 놓치지 않고 강렬한 파장을 남긴다. 흡수한 만큼의 에너지를 되쏘아 내면서, 그는 영화를 자신의 세계로 만들어 간다. 카리스마라고는 부를 수 없는 기운. 그것은 한 사람이 다른 이의 인생에 온전히 겹쳐질 때만 가능한 진실성의 힘이다.

노튼은 최근 주연을 겸한 <키핑 더 페이스>로 감독이 되었다. '어둠의 왕자'인 노튼이 왜 이처럼 경쾌한 코미디를 선택했을까? 그는 "진짜 뉴욕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말로 답한다. 뉴욕을 사랑하는 친구이자 작가 스튜어트 블룸버그와 함께 만든 <키핑 더 페이스>는 "LA와는 다른 도시",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느낌을 품은 뉴욕"을 위한 영화다.

그리고 이 영화는 도시의 하수구에 파묻히는 마틴 스콜세지보다 애정에 넘치는 우디 앨런에 가깝다. 유태교 랍비와 우정을 맺고 한 여자를 천진하게 사랑하는 사제 브라이언. 마음 속에 걸릴 것이 없는 사람만이 터뜨릴 수 있는 그의 웃음은 바로 노튼 자신의 웃음이기도 할 것이다.

<김현정(parady@film2.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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