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따라잡기] 단기외채 억제책 둘러싸고 재경부 좌충우돌

  • 입력 2000년 6월 7일 11시 06분


최근 단기외채 비율이 30%를 웃돌면서 이를 우려하는 경계론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재정경제부는 금융감독당국과 협의해 이달(6월) 중 단기외채 증가를 억제하기 위한 조치를 시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정경제부가 밝힌 단기외채 증가 억제 조치는 ‘금융기관의 외환건전성 규제방안’(이하 방안). 금융기관이 기업에 지급보증하는 무역신용 중 20%를 외화부채로 포함시키고, 만기 3개월 이내 외화유동성 비율(=외화자산/외화부채)을 현재 70%에서 80% 수준으로 상향조정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특히 재경부는 최근의 단기외채 증가가 기업들의 무역신용 증가에 의한 것이라고 진단, 금융기관에 대한 외환건전성 규제를 강화함으로써 단기 무역신용 축소를 통해 단기외채 증가 억제는 물론 수입급증세도 낮춰 경상수지 흑자 관리용으로도 활용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재경부의 이 방안에 대한 정부 안팎의 반응은 건전성 확보라는 차원에서 대체로 동의할 수밖에 없지만, 단기외채 증가 억제나 경상수지 흑자관리 목표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겠냐는 정책실효성에 대해서는 회의론이 만만찮다.

특히 무역업계나 금융권에서는 수출축소·무역수지 악화, 외화자금의 단기화·신용경색 우려를 제기하면서 반발하고 있고, 산업자원부나 금융감독위원회도 내심 달가와 하지 않고 있다. 더 나아가 전문가들은 규제강화에 따른 통상마찰 우려와 함께 재경부가 정책목표와 수단을 혼동하면서 정책신뢰성을 잃고 있다는 비판론을 제기하고 있다.

재경부 역시 단기외채 증가가 현재로서는 부담스럽지 않고 또 수입감소 효과를 자신하지 못하면서도 예방적 차원에서 도입한다는 논리적 궁박함을 보이면서도 ‘가급적 6월중 시행’을 밀어붙이는 한편 앞으로 외은지점들도 외화유동성 비율을 준수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겠다는 공격적인 자세를 감추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강공태세와는 달리 재경부가 방안추진을 공표한 지난 5월초 이래 한달이 넘도록 지지부진한 상태이고, 정부 부처간 협의과정이나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열린 ‘규제개혁위원회’ 분과회의에서도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한 채 대립양상이 가중되고 있다.

다음은 방안을 둘러싸고 빚어지는 논란 중 몇 가지 핵심쟁점을 짚어본다.

▲ 단기외채 증가를 보는 시각 차이

재경부는 기업의 단기 무역신용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단기외채 비중(4월말 33%)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대외지급능력을 점차 위협하는 수준에 달하고 있어 예방적 차원에서 이를 억제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무역신용 급증세는 기업들의 부분별한 수입신용 확대와 함께 금융권의 남발도 한 몫하고 있어 경상수지 관리차원에서도 억제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무역업계나 민간 전문가들은 무역신용 증가에 의한 단기외채 증가에 대해 정부가 과도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증가내용을 살피지 않고 축소필요성이라는 형식논리만을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소비재 수입이 증가해 무역수지가 악화됐다면 문제이나 대부분 무역신용은 부품이나 원자재 등 수출을 위한 수입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단기외채 비율이 30%를 넘었다고 무조건 대외지급능력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특히 단기외채를 외환보유액으로 커버할 수 있으면 되는데 현재는 이미 2배에 달하고 있어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과거처럼 종금사 등 단기자본으로 기업들이 무분별하게 투자를 확대해 대오지급능력이 상실된 경우와는 성격이 달라 위협요인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기업들이 무역신용을 받을 수 있는 것은 IMF 위기 이래 대외신용도가 그나마 회복됐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재경부도 단기외채 증가는 기업들의 대외신뢰도가 높아졌다는 긍정적 의미이며 무역신용에 의해 불가피하게 늘어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더 나아가 가용외환보유액 확충이나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수준을 감안할 대 종합적인 대외상환능력이 향상돼 제2의 위기는 없다고 강조까지 하고 있다.

▲ 정책 실효성에 대한 회의론 많아

재경부는 단기외채 증가 억제를 위해 금융기관 외환건전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정부 내 산업자원부나 금융감독위원회, 무역업계나 금융계 모두 대체로 동의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금융기관 건전성 강화가 ‘무역신용의 감소→단기외채 감소·수입 감소’라는 효과로 연결될 지 여부에 대해서는 엇갈린 견해를 보이고 있다. 재경부는 금융기관 외환유동성 사정에 별다른 무리없이 도입해 정책효과를 일정정도 볼 수 있다는 입장인 반면 산업부와 민간에서는 수입애로와 신용경색으로 수출에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재경부는 금융기관의 무역신용의 경우 BIS 비율 산정시 이미 20%의 위험가중치를 이미 적용하고 있어 무역신용의 20%를 외화부채로 산입하는 것은 새로운 규제도 아니고, 외환유동성 비율을 올리더라도 이미 금융기관들이 80∼90%선에서 유지하고 있어 무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또 이를 도입할 경우 무역신용에 대한 관리를 좀더 철저히 하게 하고, 일부 원자재 등 수입 감소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벤처 등의 중복 과다수입 등을 막아 무역수지 차원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에 따른 수입감소효과를 약 3%로 추정할 뿐 구체적인 증거를 내놓지 못하면서 예방적 차원에서 필요다는 점만 부각시키려 하고 있다.

아울러 금융기관은 이미 단기신용의 2/3을 3개월 내에서 운용하고 있어 환어음 매입 우려는 없으며, 만약 환어음 매입을 꺼린다고 하더라도 수출입은행의 수출환어음 재할인 매입 자금이 올해 50억달러 가량 예정돼 유동성비율 인상이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산업부나 무역업계·금융기관들의 시각은 판이하다. 단기외채 증가 억제를 위한 정책이라는 점은 이해하겠지만, 무역신용의 20%를 외화부채로 산입하면 오히려 은행들의 수입 L/C 개설 회피로 ‘수입축소→수출애로→무역수지 축소’라는 악영향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또 현재 은행들이 외화유동성 비율을 80∼90% 수준으로 여유를 두고 운용하고 있는데, 규제기준을 높이면 당장 은행은 선별매입을 할 것이고 우량기업 우선 배정에 따라 한계기업들은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무역업계의 한 관계자는 “수출용과 내수용 구분도 어렵고, 또 은행들의 기피로 수출이나 기업자금사정에 당장 악영향을 줄 것이 뻔하다”면서 “현재대로 3∼4개월 유지하고 문제가 될 경우 단계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도대체 정책순위가 외채 관리인지 무역수지 방어에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 신용경색·경기둔화 가능성 없나

전문가들도 외환건전성에 단기 위험성이 없는 상황에서 건전성 규제가 너무 강화돼 수입수요가 크게 준다면 곤란하며, 특히 최근 경기상승세가 꺾이는 모습이고 수입물량 증가율은 이미 둔화되고 있어 부정적일 경우 이번 조치가 경기급락세를 부추길 수 있다고 경계하고 있다.

이들은 향후 경기둔화를 상승반전시킬 수 있는 것은 소비나 투자쪽이 아니라 수출이라는 점에서 신중론을 피력하면서 아울러 이번 조치로 은행의 위험자산이 증가하면 대출 축소로 이어져 중소수출기업의 자금회전이나 수입L/C개설에 상당한 타격이 있을 것으로 우려했다.

민간경제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최근 금융권은 제2금융권 구조조정, 신BIS 비율도입, 부분예금자보호제도 도입 등으로 안정성향이 높아지면서 자금이 단기부동화되고 있다”면서 “건전성 규제는 장기적인 문제이니 만큼 1∼2개월의 효과를 보고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무역수지 문제로 속앓이를 하고 있는 산업부는 5월말 무역업계 간담회에서 재고지원요청을 받고 수출이나 무역수지에 악영향을 최대한 차단하겠다고 강력히 맞서고 있다. 또 감독을 맞고 있는 금감위 역시 파급효과가 어떻게 나타날 지 경험적으로 불확실한 상황이고, 최근 금융권에 기업들의 원화자금 지원을 독려를 하고 있는 가운데 향후 외화쪽의 자금흐름이 왜곡되지 않을까 우려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게다가 재경부의 생각처럼 외은지점까지 외화유동성 비율준수 대상으로 포함할 경우 외화자금의 단기화는 더욱 부추겨질 공산이 크다.

금융계 관계자는 “외은지점은 보통 본점에서 단기로 차입해다가 국내에서 단기 롤오버(roll-over) 형태로 운용하거나 장기로도 운용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만약 외은권을 포함시킬 경우 우리은행들이 투자부적격 상황을 감안하면 외화의 단기화가 이뤄지고 때로는 신용한도(credit line)를 축소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 정책목표와 수단간 정합성 혼돈

재경부는 당초 지난 4월말 이래 2단계 외환자유화 조치를 준비하면서 단기외채 증가 문제를 건전성 차원에서 검토해 나간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다 5월초 국무총리 주재 경상수지 종합대책 마련 과정에서 미시대책의 일환으로 외환건전성 규제를 집어 넣었고, 단기외채 비율이 30%를 넘어선 뒤 경제위기설이 퍼지자 외채억제 문제로 인식하게 됐다.

이 같은 재경부의 정책인식에 대해 전문가들은 재경부가 외채 억제·경상수지 방어·외환 건전성 확보 등 세 가지 다른 정책목표를 혼동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근시안적인 사고로 정책목표를 바꿔가면서 거시변수와 미시변수를 혼동하고 여기에 정책목표와 수단간 정합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외환건전성 규제강화라는 수단을 통해 경상수지나 외채를 관리한다는 자체가 정책논리상 맞지 않으며, 다른 파급효과를 감안하면 정책실효성도 기대할 수 없다며 재경부가 정책일관성을 상실해가며 스스로 정책신뢰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재경부가 성장이나 물가, 경상수지라는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 욕심을 부리고 있다”면서 “경상수지 종합대책도 대부분 부문별 미시대책이고 장기성 대책이어서 단기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데도 깊이 없이 단기성과에 집착하고 있다”면 신중론을 당부했다.

산업부의 한 관계자는 “올해 경제성장률이 예상보다 높아지고 원유가가 높아지면서 무역수지가 전망치 달성이 불투명한 상황”이라면서 “이는 경험적 검증이 없는 대책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거시변수인 성장률을 조정하거나 수지전망을 낮출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 어떻게 결론날까

외환건전성 규제강화안은 오늘 오후 2시에 열리는 규제개혁위원회 경제1분과회의가 중대 고비가 될 전망이다. 지난주 두 차례의 회의를 통해 격론을 벌인 바 있어 이미 양측의 입장은 모두 드러났고 어떻게 절충안이 만들어지느냐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규제개혁위원회 관계자는 “지난주 두 차례의 회의, 특히 지난주 금요일 임시회의는 이 문제가 단독안건으로 오를 정도로 양측 입장이 팽팽히 맞서 있다”면서 “오늘도 오후에 시작해 저녁 몇시까지 갈지, 또 어떻게 결론이 날 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나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들은 외환건전성 확보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무역신용에 대한 규제강화가 자칫 WTO 등 무역자유화 흐름에 위배되는 사안이며, 수출감소 등 여타 부작용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로서는 예단하기 힘들지만, 합의안을 도출한다면, 무역신용의 외화부채 20% 산입은 대체로 수용하는 방향에서, 외화유동성비율 상향조정안은 현수준 유지나75%선으로 조정폭 축소, 단계적 시행 등의 보완책 속에서 의견절충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규제개혁 위원회 관계자는 “계량화가 곤란하지만, 유전스 L/C의 경우 20%를 외화부채로 산입하면 수출용 원자재 비율(약 50%)을 감안하면 수입감소 효과가 수출감소보다는 큰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러나 외화유동성 비율은 단기라도 롤오버(roll-over)를 통해 계속 유지되고, OECD 회원국가들이 나라사정에 따라 20∼100%를 유지하고 있어 여러 의견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기석 <동아닷컴 기자> dong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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